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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평화 올림픽과 불안의 최전선 / 박석민

등록 2018-02-05 18:02수정 2018-02-05 19:00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

최강 한파로 모두가 꽁꽁 몸을 싸매는데 길에서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평화로운 시골마을 소성리에 미국 사드가 배치된 지 넉 달이 지났다. 여든이 넘으신 노모들이 거북등처럼 갈라진 손을 맞잡고 매일 마을 앞길에 모인다. 손주들에게 전쟁의 위험을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온 지킴이들은 주민들과 함께 사드 관련 장비와 공사 장비들을 막기 위해 매일 새벽 강추위 속에서 당번을 선다. 그리고 사드가 배치된 기지를 향해 “사드 가고 평화 오라!”고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사드를 몰아내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매일같이 경북 김천역 광장에서 켜든 시민들의 촛불도 500일을 훌쩍 넘겼다. 주민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빼앗긴 채 전쟁과 다름없는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피폐해졌다. 사드 배치 지역인 소성리와 김천은 졸지에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하고 불안한 최전선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절차도 내용도, 피해 당사자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정확한 인식이다. 대통령의 인식은 한국에 배치된 사드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국가 간 합의는 반드시 공식문서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국가안보와 국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일 경우 국회 비준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사드 배치 결정은 공식적인 한-미 간 외교문서 없이 밀실, 구두 합의로 전격 처리되었다. 사드 배치가 원천무효인 이유다.

배치 자체가 원천무효이니 이후 전개된 유류 반입과 시설 및 기반 공사, 장비 가동 등 모든 게 불법이다. 즉각 중단해야 한다. 주한미군 측은 주민들의 반발로 육로를 쓰지 못하고 헬기로 유류와 장비 등을 실어 나른다. 이 또한 우리 군과 경찰의 비호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제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사드 운영비용도 우리더러 내라고 을러댈 것이다.

한·미 당국의 사드 배치 명분은 ‘북핵 위협’이었다. 물론 이 주장은 거짓말이다. 이젠 모두 알게 되었지만 사드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 사드 레이더를 핵심으로 하는 사드 배치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의 산물이고, 미국과 일본을 위한 것이다. 사드는 한반도에 전쟁과 핵 대결을 불러오고, 우리 국민들은 ‘동북아 신냉전’의 희생양이 된다. 이젠 끝난 거 아니냐며, 언론이 외면하고 여론도 무관심해진 지금도 사드 철회 투쟁을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사드 철회 없이 이 땅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드 철회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평창올림픽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이 기간 동안 한-미 연합훈련과 북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등 이른바 ‘쌍중단’이 일시적으로 실현되었다. 북-미 대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올림픽 이후에도 ‘쌍중단’이 지속되고,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모처럼 얻은 평화의 기운을 더 높여 평화협정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이루기 위한 협상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2000년 남과 북의 단결된 힘으로 6·15선언을 이뤄내고, 그 기운이 북-미 코뮈니케로 이어진 가슴 벅찼던 과정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부활하기를 염원한다. 평화가 평창을 넘어 한반도 전체로 흘러넘쳐야 한다.

남북, 북-미 대화로 북핵 위협이 사라지면 불법 사드는 그 배치 근거를 잃게 된다. 뼛속까지 시린 추위에도 김천 평화광장에서 “사드 가야 평화 온다!”고 외치는 김천 시민들, 성주 소성리의 팔순 노모들의 마지막 소원대로 평창올림픽을 넘어 평화의 기운이 사드를 몰아내 일상을 되찾고,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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