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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남북 청소년 평화오케스트라 만들자 / 한정숙

등록 2018-04-18 18:28수정 2018-04-18 19:43

한정숙 서울시 관악구 솔밭로7길

“꽃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히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금강>의 시인 신동엽은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 밤은” 비무장지대가 확대되어 한반도 전체가 평화지대가 되는 “재미난 꿈”을 꾸었다고 했다. 열전과 그에 이은 냉전의 시기를 늘 비장하게 살다 갔던 그에게는 평화의 꿈이란 취해서 잠들어야 꿀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나 보다.

사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도 그랬다. 나의 다정한 외국인 친구는 한반도 사정을 염려하는 근심 어린 안부편지를 새해인사로 보내왔다. 그러나 몇 달 사이에 우리는 남북관계의 큰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그 길이 어떻게 이어질지 미리 단정할 필요 없이 스스로 그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대담한 상상력과 지혜를 모아 함께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래서 그 길을 함께 가자고 모두에게 권유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나의 벗들도 평화가 꽃피는 한반도를 만드는 데 음악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다. ‘남북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광복절에 합동공연을 하게 하자. 판문점이건 비무장지대건 어디라도 좋다. 그다음에는 베이징이건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서는 바이칼 호수 주변 어느 도시건, 베를린 장벽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했던 브란덴부르크 문 앞 광장이건 찾아가서 세계인들 앞에서 공연하게 하자’고 말이다.

‘남북 청소년 평화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는 이미 탁월한 모범이 있다. 유대계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함께 만든 ‘서동시집 오케스트라’(West Eastern Divan Orchestra)이다. 오케스트라 명칭이 된 ‘서동시집’이란 기독교권 시인인 독일의 문호 괴테가 14세기 페르시아의 대시인이었던 하피즈의 시를 읽고 감동받아 동과 서, 종교와 문명권을 뛰어넘는 인류의 사랑과 공감을 노래한 시들을 담은 시집 제목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하여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 오케스트라는 세계를 순회하면서 연주회를 열고 있다. “동방은 신의 것! 서방은 신의 것! 북쪽 땅과 남쪽 땅은 그의 손안에서 평화로이 쉬네”라고 노래한 괴테의 정신처럼, 바렌보임은 2011년 광복절에 이 관현악단을 이끌고 찾아와 임진각에서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였다. 외국의 연주자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해주는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러한 축원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해야 할까.

기성세대는 최근까지, 보수정부를 거치는 동안 북한과의 관계가 경색된데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북한에 대한 반감이 심화되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대화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젊은 세대가 동참할 것이며 더 나아가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로운 평화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갈 것이라는 꿈을 꿀 수 있다.

한국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의 실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북한도 클래식 음악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기에 수준 높은 연주를 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뛰어난 지휘자의 지도 아래 재능과 삶을 향한 정열과 용기를 모아 음악을 통해 함께 소통하고 화합하면서 세상을 향해 평화를 외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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