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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친구야, 오빠가 어디로 갔니? / 양민숙

등록 2018-05-16 18:24수정 2018-05-16 19:46

양민숙 시인·송정요양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임상병리사

5월21일 해남읍

초파일 화창한 날씨에도 흉흉한 소문이 우릴 짓눌렀지. 나들이 다녀온 점심께, 눈깔 빠진 노란 미니버스가 읍내에 나타났어.

하얀 춘추복을 입은 여학생 두셋, 남자 교복, 반소매 옷, 흰 셔츠를 걷어 올린 앳된 청년 등 10여명이 타고 있었지. 땀에 얼룩진 가녀린 그 모습이 읍내를 얼어붙게 만들었지.

툭-툭-툭-툭-

유리창 없는 빈 버스 창문 너머로 목재소에서 갓 꺼낸 새 각목을 두드리며 범접 못 할 침묵으로 뭔가를 전하려 한 걸 너는 보았니? 다 못 한 말이 있는지 꿈에도 나타나 옷깃을 날렸지.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친구야, 네 오빠가 어디로 갔니? 너의 피붙이, 남매뿐이었는데. 수업 전에 ‘일본 옆 어떤 나라’의 정치를 목에 핏대를 세우며 풀어주시던 담임선생님이 돌연 묵념을 올리자고 했지. 모두 일어나 고개를 숙이자, “○○ 오빠가 죽었습니다.”

가슴이 내려앉아 우린 숨소리도 내지 않았지.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으니.

광주에선 어린아이, 노인까지 거리로 나왔지. 모든 시민이 전두환과 신군부 퇴진을 외치다 날이 새는 새벽에 먼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어. 우리 오빠도 그랬지.

21일 새벽 오빠는 광주역 앞에서 최초로 계엄군 총에 숨진 시신 두 구를 발견했어. 1톤 트럭을 가져온 사람과 오빠는, 광주역 수화물 업체가 버리고 도망간 수레에 시신을 실어 가마니를 덮어 트럭에 옮긴 뒤 도청으로 갔대. 그냥 도청으로 가야 했단다.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이 몰려왔단다. 사람들이 시신을 내리는 동안 오빠는 수레를 잡고 있다 사진에 찍혔어.

오빠는 지금도 사진 속 모습이 희생자도, 부상자도 아니라서 별 의미 없다고 웃어.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그날 오후, 광주의 울분은 봇물 터지고 말았지.

정권 찬탈에 희생된 너의 오빠와 난자당한 희생자들, 병원 복도에 누워 울부짖는 부상자들.

고립된 광주적십자사에서 전쟁 시에 쓸 혈액백을 목숨을 걸고 내놓아야 했던 분.

사람들은 살아 있어서 부끄럽다 했지. 살아 있어서 미안하다 했지.

원통한 맘 해마다 광주 땅을 밟아 돌고 돌아도, 전두환과 신군부의 날조에 속은 몇몇이 선량한 시민의 맹렬한 적군이 되어버린 나라.

친구야, 광주의 상처를 안고 어찌 살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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