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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존 볼턴 / 안문석

등록 2018-05-21 18:36수정 2018-05-21 19:37

안문석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조지타운대 객원교수

14년 전의 일이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부시와 존 케리가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한반도 정책의 변화 여부가 주목거리였다. 당시 <한국방송>(KBS) 기자였던 필자는 특집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우선 2차 북핵위기의 시발점이 궁금했다. 셀리그 해리슨 국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을 만났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고, 북한도 자주 방문하면서,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리려 노력하는 연구자였다.

2차 북핵위기의 시작에 대한 질문에 그는 “존 볼턴과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2002년 10월3일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방북했다. 첫날 켈리는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켈리는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실토하라고 압박했다. 김계관은 고개를 저었다.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가 다음날 켈리를 상대했다. 다시 추궁에 나선 켈리에게 강석주는 ‘고농축우라늄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게 되어 있다’고 답했다. ‘가질 권한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강석주의 말을 놓고 미국 국무부 내에서 강·온파 사이에 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관련 기사를 크게 실었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각 언론이 후속 보도를 이어가면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보유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북핵 위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해리슨은 당시 국무부의 정보가 볼턴 쪽에서 유출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딕 체니 부통령,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에 이어 부시 행정부 네오콘의 넘버3였다. 온건파가 강석주의 말을 문제 삼지 않으려 하자, 군축 담당 차관으로 국무부 내 강경파의 리더였던 볼턴 쪽이 언론에 ‘북한 고농축우라늄 보유’라는 잘못된 정보를 유출했다는 것이 국무부 내 상당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해리슨의 입장이었다.

물론 북한은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도 않고,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은 제네바 합의를 폐기하는 길로 갔고, 그로 인한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북한이 어느 정도 우라늄 농축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즉 저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를 위한 준비작업 정도를 하고 있었는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고 있다.

지금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된 김계관이 볼턴을 맹비난하면서 ‘지난 기간 조-미 대화가 진행될 때마다 볼턴과 같은 자들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부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읽힌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내 강·온파는 여전히 존재한다. 강경파 중에는 북한과의 대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슈퍼 매파도 상당하다. 볼턴은 그런 인물이다. 문제는 이런 인물들이 한반도 문제의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시점이 해빙의 순간이다. 2002년도 그런 시점이었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었고, 북한과 일본 사이에도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관계가 개선되고 있었다. 긴장의 해소는 슈퍼 매파에게는 입지 축소이다. 자신들의 지원세력인 군부, 군산복합체도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러니 해빙의 물줄기는 돌려놓고 싶어 하는 게 이들의 속성이다.

미국의 작은 파당이 우리의 운명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까지도 우리의 지향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보다 자주, 보다 긴밀하게 협의하고, 그것이 규범이 되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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