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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비무장지대엔 ‘세계평화자연박물관’을 / 이병훈

등록 2018-05-28 18:25수정 2018-05-28 19:39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인류 생활에 쓰임새가 많은 절대적 가치인가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밤하늘의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 중에 이러한 자연을 지닌 유일한 별인 지구에 태어나 산다는 것 자체가 천재일우의 행운이요 지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연을 마구 훼손한 인류는 1992년 ‘기후변화 협약’과 ‘생물다양성 협약’을 맺어 보존과 복원에 노력하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인류세(人類世)에 접어들어 학자들은 비운의 전망을 내놓을 뿐이다.

소중한 땅과 물을 소홀히 한 한반도는 남한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다는 데서 오는 자긍심과는 반대로 자연의 측면에서는 나락 일로를 걷고 있다. 오래전에 한 학회에 초청된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태학자 술레 교수는 기조강연을 마친 후 질의시간에 지난 사흘간 남한 일대를 돌아본 소감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땅들이 너무 쪼개져 있어(斷片化) 기껏해야 산토끼밖에는 살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해 모두를 폭소와 함께 경악에 빠뜨렸다. 최근 최재천 교수가 한 일간지에 남한이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와 유럽을 잇는 철도를 놓는 것은 좋으나 철도건 도로건 비무장지대 통과는 지하나 고가로 하자는 식의 제안을 내놓았다. 술레 교수의 문제 제기에 대한 적절한 대안으로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탁견이다.

지구상에는 박테리아 말고 진핵생물이 몇 종이나 살고 있을까? 학자에 따라 추정은 다르나 최근의 보고를 종합하면 약 870만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분류학자들은 지난 4반세기간 생물들을 열심히 기록해왔으나 기껏 추정 종수의 17%인 150만여종을 기재했을 뿐이다.

그러면 그 많은 종들을 기록으로 다 보고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올법하다. 현대과학의 큰 진보를 가져온 생물 가운데는 육안으로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의 작은 종들이 많다. 최근 한국과 미국의 공학자들이 반도체 칩의 발열을 막는 혁신적 구조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길이 1~2㎜의 톡토기라는 토양산 절지동물의 표피 미세구조에서 암시를 받았다고 한다. ‘유전자 가위 기술’도 박테리아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체계를 활용한 기술이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사자, 호랑이, 판다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생물종이 ‘노다지’가 될지는 예측불허다. 종에 대한 보전과 연구는 앞의 사례들과 함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웅변하고 있다.

이제 디엔에이(DNA) 수준으로 내려가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들의 유전체를 밝히겠다는 사업, 즉 ‘지구바이오게놈사업’(EBP)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크게 기여할 재료가 바로 자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표본들이다.

한국에는 한반도의 생물종과 화석 등을 보존할 기관이 없었다. 일부 학자들이 1990년부터 ‘국립자연박물관 설립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호소해 그 설립이 추진되었지만 결국 중단되었다. 이후 생물다양성협약이라는 외부 압력에 밀려 2007년에 국립생물자원관이 발족되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이 세워진 것은 만시지탄이나 천만다행이다.

생물의 생존과 진화는 혼자 일어나는 게 아니다. 생물은 다른 생물들과는 물론 환경, 기상, 지질 그리고 인간의 문화와 공존하며 상호작용한다. 다시 말해 생물들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데는 분야 간의 융합과 통섭이 필요하다. 즉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모두가 허상일 뿐이다. 바로 국립자연박물관이 필요한 이유다. 세계 각국에 국립자연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2년 전에 북한에도 국립으로 ‘평양자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고 보도되었다.

나는 한국의 기존 자원관과 생태원에 기타 분야를 추가해 서로 아우르고 종합하여 넓고 높게 지평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한 자연과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해 용산에는 ‘국립자연박물관’을, 그리고 비무장지대에는 ‘세계평화자연박물관’을 세울 것을 간곡히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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