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KDI 최저임금 보고서, ‘실’만 강조하고 ‘득’은 감췄다 / 황선웅

등록 2018-06-06 17:50수정 2018-06-06 20:46

황선웅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4일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가 큰 논란을 낳고 있다. 주요 내용은 대통령 공약대로 법정 최저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하면 고용 감소폭이 확대되어 득보다 실이 커질 수 있으므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DI, 文정부에 직격탄’, ‘최저임금 1만원 땐 일자리 32만개 감소’, ‘최저임금 인상 득보다 실 많아, 속도 조절해야’. 보고서의 결론을 선정적으로 강조한 기사들이 일제히 주요 언론 1면에 올랐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의 비판도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비판은 보고서가 한국이 아닌 외국의 추정치를 이용하면서 그마저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과대 추정된 값을 편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방법상의 한계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다른 논문의 결과를 이용해 보고서의 핵심 결과를 도출하면서 원래 논문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변화율을 자신이 직접 추정하는 대신 허러스토시(Harasztosi)와 린드네르(Lindner)의 논문(2017)의 추정 결과를 그대로 이용했다. 그러한 선택의 이유로는 이 논문이 가장 최근 연구 중 하나이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와 최저임금/중위임금 비율 등이 우리 경제 상황과 유사한 헝가리의 선례를 분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헝가리의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추진됐다. 우리 정부가 법정 최저임금을 2017~2020년 3년에 걸쳐 6470원에서 1만원으로 54.6%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헝가리의 최저임금은 2001년 한 해에 57% 인상됐고, 2002년에도 추가적으로 전년 대비 25% 올랐다.

이러한 헝가리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어떠한 경제적 결과를 초래했는가? 허러스토시와 린드네르가 강조한 첫번째 결과는 이처럼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후 4년간 고용에 미친 효과가 0에 가까울 정도로 매우 작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결론은 ‘실’보다 ‘득’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이다. 매우 큰 폭의 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고용 감소가 극히 경미한 수준에 그치면서 저임금 노동자의 총소득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는 이러한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논문에는 그 외에도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액 중 사업주 이윤 감소로 귀결되는 비율은 높지 않고 점진적인 재화가격 인상을 통해 특히 고소득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비율이 높다는 결과가 있다. 이는 최저임금 정책이 효과적인 소득재분배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출 제조업보다 내수 기반 서비스 산업의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높을수록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작다는 결과 역시 우리 경제의 현재 고용구조를 고려할 때 시사점이 매우 크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도 득과 실이 있다. 일정기간 기업부담이 늘 수도 있지만 소득불평등 완화, 내수확대, 생산성 제고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는 득은 분석하지 않고 실만 강조하면서 득보다 실이 크다는 잘못된 주장을 폈다.

다른 연구자의 결과를 원저자의 주장과 상반되게 이용한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허러스토시와 린드네르의 논문은 매우 크고 빠른 최저임금 인상도 저임금 노동자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경미하고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점을 규명한 대표적 연구로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를 이용해 최저임금 정책의 득보다 실이 크다고 주장한 연구는 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가 유일하다.

몇 해 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의 저서 <위대한 탈출>의 번역본이 출간되는 과정에서 국내 출판사에 의한 원문 누락 및 왜곡 의혹이 제기되어 우리 출판계가 국제적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허러스토시와 린드네르가 자신의 논문이 현재 한국에서 활용되고 있는 방식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가 이용한 허러스토시와 린드네르(2017)의 논문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www.sole-jole.org/17708.pdf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