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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화물보다 사람이 먼저다 / 박용훈

등록 2018-07-04 18:32수정 2018-07-06 14:07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박사

선진국이라 해도 트러커(장거리 화물차 기사)들의 생활은 녹록지 않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다 보면 휴게소에 들른 화물차 기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대형차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별도의 동선으로 휴게소를 이용한다. 트러커를 위한 공간이 있고, 스페셜 가격의 메뉴도 제공된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음식을 사 먹는 데 이골이 난 일부 기사들은 휴게소 주차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미리 싸온 음식을 먹거나 간단한 조리를 해서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한다. 독일 국경을 넘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가도 화물차 기사들의 생활 수준은 대동소이하다. 유럽 대륙을 동서로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니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불편한 식사와 잠자리를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이나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화물차를 몰면서 호텔에서 잠자고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게 아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 화물차를 운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와는 다른 점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트러커가 전문직업인으로 인식되고 전문직인 만큼 운전자들이 나름의 자부심을 갖는다. 운행하며 지켜야 할 법규나 안전수칙도 대부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법을 어기면 일시적인 이익을 볼 수 있지만 어쩌다 경찰에 걸리기라도 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벌금을 물거나 운행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지만 심한 경우는 구속되거나 직장을 잃기까지 한다.

우리나라는 도로교통법에 적재 제한 및 적재물 추락방지 규정을 두고 있는데 이를 위반하면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형을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재 관련 세부규정이 없고 현장 단속이 미흡해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과적이나 적재 불량에 대한 처벌도 만만치 않다. 벌금이나 과태료 등 경제적인 제재 외에 사고 유발 등으로 인명 피해가 나면 징역형을 부과한다.

영국에서는 관련 규정 위반 시 최대 750만원(5천파운드)의 벌금을 물리고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 부과하고 있다. 특히 관련법을 근거로 하위 규정을 상세히 정해놓아 화물차 기사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알 수 있게 하여 준법을 통한 안전운행을 생활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는 약 110만건으로 이 중 13%에 해당하는 14만건이 화물차 사고인데, 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보면 전체 2만3천명의 22%인 5150명에 이르고 있다. 또한 아직도 고속도로에서만 매년 12만건의 과적과 적재 불량이 단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물차 사고의 심각성과 아울러 아직도 안전보다 화물 운송이 먼저인 우리 교통문화 현실을 심각히 뒤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최근 근로시간 단축 문제로 우리 사회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이러한 노동환경 변화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화물차 기사들은 대부분 개인사업자여서 주 52시간 근로의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이 법의 제정 취지로 보면 장시간 과로 운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절실해 보인다.

선진국처럼 화물업계가 기사들이 적정한 보수를 받도록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고 정부는 기사들의 운행시간과 휴식시간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감독해야 한다. 동시에 기사들도 돈보다 삶이 중요하고, 일보다 안전이 중요함을 명확히 인식해 안전규정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나 화물업계 그리고 우리 사회가 화물차의 안전운행과 기사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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