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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노사관계, 침묵의 불만 대신 소통해야 풀린다 / 김동원

등록 2018-07-18 18:04수정 2018-07-18 19:50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 교수·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장

사람은 일하는 동물이다. 사람이 평생을 매일 8시간 이상씩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일’이라고 한다. 유희는 즐겁지만 평생 매일 8시간씩 할 수 없다. 일만이 유일하게 인간이 ‘평생’ 하는 활동이다. 원시시대에는 일이 주로 개인 단위로 이뤄졌지만, 인간의 지능이 발달하고 규모의 경제가 효과적임을 깨달으면서 일은 집단작업이 되었다. 즉 계획을 세우고 지시를 내리는 계층과 현장에서 직접 일을 수행하는 계층으로 나뉘게 되었다. 역사가 보여주듯 양 계층 사이에는 생산방식과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내재하며 또 표출되어왔다.

기록에 남아 있는 인류 최초의 노사분규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있는 기원전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에 불만을 가지고 조업을 중단하고 항의한 것이다. 현대적인 노동조합과 노사갈등이 등장한 것은 18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기부터이지만 노사갈등은 자본주의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옛 사회주의권의 러시아, 중국 등에서도 노사갈등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즉 노사분규는 체제와는 상관없이 일에 대한 지시를 내리는 계층과 그 명령을 수행하는 계층이 있는 한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노사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다만 국가 간의 노사갈등의 빈도와 강도는 국민성, 문화, 역사, 경제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일 뿐이다.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의 노사관계가 분규와 알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퍼져 있다. 심지어 미국의 <엘에이(LA)타임스>는 10여년 전 대한민국을 ‘스트라이크 투 데스’(Strike to Death), 즉 ‘죽을 때까지 파업하는 나라’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하지만 냉정히 본다면 한국의 노사관계는 몇몇 큰 사건으로 외국 언론의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운동 와중에 노사갈등이 폭발했던 1980년대 말 이후를 본다면 대한민국의 노사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정도이다.

현재 한국의 노사관계는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논란과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노사정 사이에 거의 대화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본다면, 지난해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최소한 양대 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참여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진일보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에는 소통과 의견 개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노사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노사문제는 ‘침묵하는 불만’보다는 ‘이견을 드러내고 논쟁’하는 가운데 해결책이 찾아지는 법이다.

‘노사관계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2018 서울 세계대회'가 오는 7월23일 세계 60여개국의 노사문제 전문가 1800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열린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용·노사관계-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국내외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며 지혜를 모은다. 대회 말미에는 한국의 대표 기업 사업장 방문도 예정되어 있다. 해외 석학들과 각국의 학계, 기업, 정부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는 이 대회는 한국의 노동 관련 학문의 수준과 기업과 정부의 정책 역량을 한 단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전례 없는 대규모 국제 학술대회는 젊은 학생들과 학자들을 자극하여 노동 분야 학문의 후속 세대 양성에 기여하고, 장기적으로는 우수한 학자와 노동문제 전문가들을 배출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세계대회를 계기로 제대로 국제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했던 한국의 노사관계도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에 걸맞은 발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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