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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산업재해 이후, 마음의 상처를 간과해선 안 된다 / 양선희

등록 2018-07-30 18:33수정 2018-07-30 19:07

양선희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회원

위험한 기계와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는 산업재해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공식적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9만여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1800여건의 사망재해가 발생하며,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 900여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최소 한명의 재해자, 한명의 목격자를 낳는다. 재해의 범위가 큰 경우에는 재해자와 1차 목격자 외 목격자, 응급 처치나 구조에 참여한 노동자, 안전보건관리자, 교대조원, 팀원, 기숙사 룸메이트 등 많은 사람이 심리적 외상을 경험할 수 있다. 2016년 산재 통계에서 25건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산업재해로 인정되었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회적으로 인식이 부족해서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은 신체적 손상과 더불어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2차 사고의 재해자가 되는 노동자, 끝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자살하는 노동자…. 우리가 미처 예방하지 못한 수많은 산업재해가 산업재해로 끝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외상을 트라우마라고 하며, 트라우마를 경험한 후 반복적으로 그 사건을 회상하고 사건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그 기억을 회피하려고 애쓰는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진단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우울, 불안, 무감각, 해리, 기억장애 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동반하고 실직, 가정불화, 만성적 건강장애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미국에서는 심장질환 다음으로 의료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꼽는다.

산업재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여타 트라우마와 다른 특성을 몇가지 지닌다. 사고현장이 매일 출근하는 곳이어서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사고현장에 재노출되고, 사고를 재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 대한 분노가 있을 수 있고, 노동자 간 대처방식에 차이가 있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노동자들은 나약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동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산업재해 부상자들이 다른 부상자들에 비해 더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직장으로의 복귀가 더 안 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례 보고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트라우마 사건이 발생한 경우, 다음의 사항을 고려하여야 한다. 첫째, 사고현장이 철저히 조사되고 개선되었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인식하게 해야 한다. 둘째, 개인 간 반응과 대처방식에 차이가 있음을 주지시키고 서로 돕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셋째, 의무적으로 전 노동자가 상담·관리를 받도록 함으로써 ‘나약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입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트라우마 경험은 중대재해 사고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독 사고, 질병의 경우에도 노동자는 다양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우리는 메탄올 중독, 구미 불산 사고 등 방송으로 접한 소식으로도 공포를 경험한다. 뇌심혈관 질환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허무감을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본다.

문송면, 원진 노동자 사망 사고 30년을 맞이하여 그들이 당한 몸의 고통과 더불어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 그들의 동료가 느꼈을 트라우마를 생각하고 그들의 가족이 느꼈을 심리적 고통을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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