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숙
목포대 명예교수 베네딕트 앤더슨의 명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이하 IC)가 10여년 만에 번역자와 출판사를 바꾸어 <상상된 공동체>로 최근 출판되었다. 이를 반겨 지난달 23일치 ‘한겨레 프리즘’에 책지성팀 김지훈 기자는 ‘베네딕트 앤더슨이란 약’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오랜 번역본 절판 및 재출간 배경에 대한 추론과 함께 이 사례를 앤더슨이 한국 출판계가 지닌 ‘고질병’에 내린 ‘처방약’으로 보고 있다.
의 1983년판과 1991년판의 번역자인 나도 차제에 저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김 기자의 추론에 문제를 제기할 필요를 느껴 이 글을 쓴다. 나는 유학 시절 지도교수를 통해 접한 (1983)의 번역본 출판을 나남에 제의하였다. 이는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라는 이름으로 1991년에 출판되었다. 저작권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출판된 이 번역본은 해적판이다. 저작권법 시행 이후 나온 증보판 때에는 당연히 저작권을 구입했다. “상상의 공동체”란 앤더슨의 민족 개념도 많이 알려져 제목을 <상상의 공동체>로 바꾸어 2002년에 출간하였다.
앤더슨의 2006년 개정·증보판을 접한 것은 2008년 번역 저작권 계약 기간이 끝나 나남이 재계약과 함께 번역을 제안한 때이다. 훑어보니 세계 여러 곳에서 가 번역된 사례들을 추적하는 ‘여행과 교통’이라는 추가 장에서 한국판 출판사인 나남의 부정적 평판과 사주의 사상적 편향이 언급되어 있었다. 앤더슨은 해적판을 출판한 나남의 저작권 구입이 일본에서 의 상업적 성공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는 민족주의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과 저작권법 시행이라는 한국 출판계 상황을 간과한 주장이다. 그는 1991년에 증보판이 나왔는데도 나남은 이듬해인 1992년에 1983년 해적판의 번역본을 출간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첫 번역본이 출간된 때는 1991년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앤더슨이 역자인 나를 2005년 한국에서 만났다고 하면서 내 인상과 대화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매력적이고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해적판의 질에 대해 넘치게 사과하며, 무지막지한 마감에 맞추어 작업해야만 했다고 말했다.”(새 번역본 <상상된 공동체>에서 인용) 문제는 내가 그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의 마감 독촉도 없었다. 독촉 때문에 번역의 질에 문제가 있다고 변명을 한 일이 없다.
앤더슨의 글을 인용해 김 기자는 번역본의 오랜 절판이 부정적 출판 관행과 번역의 질에 대해 앤더슨이 재계약 불응이라는 약 처방을 내린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론한다. 나아가 그 사례가 한국 출판계 전체의 고질병에 처방한 쓴 약이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와 번역의 질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앤더슨의 글을 읽고 출판사 측의 의견을 들은 것처럼 나의 의견도 들었다면 앤더슨이란 석학의 상상 현실까지 그대로 인용하며 추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 번역본 각주에는 내가 앤더슨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 나와 있다. 한 사실에 다른 정보를 접하면 기자는 취재와 사실 확인을 할 임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석학의 말을 의심 없이 신뢰하고 글을 쓴 기자는 본의 아니게 상상된 사실의 재생산에 참여한 셈이 아닌가.
목포대 명예교수 베네딕트 앤더슨의 명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 이하 IC)가 10여년 만에 번역자와 출판사를 바꾸어 <상상된 공동체>로 최근 출판되었다. 이를 반겨 지난달 23일치 ‘한겨레 프리즘’에 책지성팀 김지훈 기자는 ‘베네딕트 앤더슨이란 약’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오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