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열 우리회계법인 공인회계사
20여년의 벤처기업 컨설팅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조세특례제한법에서 규정한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는 연구개발에 주력해야 하는 벤처기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벤처기업 운영자에게는 오히려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원래 세액공제제도는 이익이 나는 기업에만 적용되므로 이익이 많은 기업에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수익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초기 벤처기업한테는 혜택을 장담할 수 없는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 이익이 많이 나는 벤처기업이나 대기업 위주로 이 혜택이 돌아갑니다. 사실상 이들 기업들에 정부가 인건비를 보조해주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 결과 초기 벤처기업에 근무하는 연구원들이 이미 성공한 벤처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주로 대기업에 적용되는 신성장동력산업과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비 세액공제는 더 큰 문제입니다. 연구비의 최대 30%까지 연구개발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데, 이들 업종이 주로 대기업 집단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대기업에는 사업 생존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연구개발비는 주로 연구원 인건비인데, 대기업이 연구원들을 스카우트하는데 정부가 도와주는 셈이지요. 또한 연구개발비는 법인의 손금으로도 인정돼 이익이 많은 대기업들에는 최대 25%의 법인세 절감 효과도 발생합니다. 그 결과 정부가 이미 성공한 벤처중소기업이나 대기업에 연구원 인건비를 최대 55%까지 지원해주는 효과가 생깁니다. 자금력이 약한 창업 초기의 벤처기업으로선 연구원을 채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대기업 연구원의 급여는 중소벤처기업 연구원의 두배 이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카지노로 수익을 올리는 강원랜드가 신성장동력산업에 연구개발투자를 해도 이 혜택은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결국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이나 원천기술 분야에 연구개발투자를 하면 50% 이상 세금혜택을 받게 되는데, 누가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여 연구개발하려 하겠습니까? 연구개발비용으로 인한 손금 인정과 세액공제 혜택은 이익이 나는 기업에만 해당되므로, 정부가 최대 10년간 결손금 이월 사용이나 7년간 세액의 이월 공제를 허용해주긴 하나 지금 당장의 지원이 필요한 벤처기업 창업자에게는 매우 공허하게 들립니다.
한마디로 요즘 벤처기업은 연구원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벤처기업 연구원들이 병역특례가 끝나면 대기업으로 들어가고 벤처기업에는 남아 있질 않습니다. 대기업에 대한 연구개발비의 손금 인정과 세액공제가 불가피하다면 창업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도 동일한 혜택을 현금으로라도 지급해야 합니다. 현행과 같이 대기업에 유리한 고율의 세액혜택을 허용하는 한 벤처기업 활성화는 구호에 불과합니다. 벤처기업 창업이 없으면 청년 고용난도 결코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가지 지적한다면 신성장동력산업이나 원천기술에 지정된 경우와 지정되지 못한 경우의 구분도 매우 인위적이고, 이들을 차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전세계가 사랑하는 김치를 생산해서 판매하고자 하는 기업에는 어떤 혜택도 없는데, 꼭 반도체나 미래형 자동차 기업에 혜택을 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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