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성
언론학 박사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존엄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아까운 생명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내던져졌다. 김포의 맘카페에 올라온 글 때문에 투신한 어린이집 교사 이야기다. “직접 본 것이 아닌 들은 것, 또는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일은 제발 글과 댓글을 달 때 신중해 달라”는 동료 교사의 말은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직접 목격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로 둔갑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 경우가 어디 이번뿐일까.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서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의 미래엔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가짜뉴스가 일상화되면서 나타나는 탈진실 시대, 즉 개개인의 편향된 믿음이 확신에 찬 주장으로 둔갑하고 사회 전체를 휘감는 현상과 오버랩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은 올해 초 가짜뉴스가 가져올 탈진실 시대의 사회현상을 네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실 자체에 대한 불일치가 확대되면서 공적 의제에 대한 의미있는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둘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배타적 집단의식을 강화하고 이념적,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촉발한다. 셋째, 과거에 권위를 인정받았던 정부, 언론, 과학자 등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는 나날이 하락한다. 넷째, 시민 개개인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가운데 확증편향은 강화되고 정치제도나 공동체 활동으로부터 소원해진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는 이미 세계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루마니아는 지난해 거짓정보에 대한 편향된 믿음 때문에 31명에 이르는 홍역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198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한 논문이 그 발단이었다. 이후 이 논문이 거짓으로 밝혀졌고 각국에서 공식 발표를 통해 사실을 밝혔지만 허위정보가 그럴듯한 사실로 포장되었고 이를 믿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 브렉시트에 관한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는 가짜뉴스가 여론과 민의를 왜곡해 집합적 의사결정을 변질시킨 사례다. 당시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하는 단체인 보트 리브는 ‘유럽연합 탈퇴로 본국에 돌아올 천문학적 분담금의 혜택’, ‘터키 난민의 대거 유입설’ 등의 가짜뉴스를 대대적으로 퍼뜨렸다. 통계청과 독립기관인 재정연구원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지만 투표 결과는 실제의 여론과 다르게 나타났다. 가짜뉴스 폐해는 학생들의 학업에까지 파고들었다. 영국 의회의 초당적 공동위원회와 리터러시 재단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교사의 35%가 ‘학생들이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를 바탕으로 과제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교사들의 60%는 ‘가짜뉴스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마저 가짜뉴스에 멍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어디 영국뿐이겠는가. 외국 역시 가짜뉴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면서도 그들은 머리를 맞댔다. 최소한 가짜뉴스가 가져올 개인적·사회적 폐해와 대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비판은 상존하지만 1년여 동안 같이 고민을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가짜뉴스로 정권을 잡아놓고 지금은 가짜뉴스를 탄압한다’느니 ‘규제를 해야 되느니 마느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와중에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확신에 찬 주장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규제 문제도 그렇다. 규제에는 타율규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도 있다. 그럼에도 규제를 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어떠한 위험이 예견되든 정부는 그냥 손놓고 있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현실이야말로 탈진실 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조짐들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진실’과 ‘민주주의’에 대한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때도 ‘그저 명복을 빌 뿐’이라 하고 말 텐가.
언론학 박사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존엄하다. 그런데 또 하나의 아까운 생명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내던져졌다. 김포의 맘카페에 올라온 글 때문에 투신한 어린이집 교사 이야기다. “직접 본 것이 아닌 들은 것, 또는 사실관계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일은 제발 글과 댓글을 달 때 신중해 달라”는 동료 교사의 말은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직접 목격하지도 확인하지도 않은 것이 사실로 둔갑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한 경우가 어디 이번뿐일까. 우리 주변의 어딘가에서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의 미래엔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가짜뉴스가 일상화되면서 나타나는 탈진실 시대, 즉 개개인의 편향된 믿음이 확신에 찬 주장으로 둔갑하고 사회 전체를 휘감는 현상과 오버랩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공공정책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은 올해 초 가짜뉴스가 가져올 탈진실 시대의 사회현상을 네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실 자체에 대한 불일치가 확대되면서 공적 의제에 대한 의미있는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둘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배타적 집단의식을 강화하고 이념적,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촉발한다. 셋째, 과거에 권위를 인정받았던 정부, 언론, 과학자 등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는 나날이 하락한다. 넷째, 시민 개개인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가운데 확증편향은 강화되고 정치제도나 공동체 활동으로부터 소원해진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가짜뉴스로 인한 폐해는 이미 세계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루마니아는 지난해 거짓정보에 대한 편향된 믿음 때문에 31명에 이르는 홍역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198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한 논문이 그 발단이었다. 이후 이 논문이 거짓으로 밝혀졌고 각국에서 공식 발표를 통해 사실을 밝혔지만 허위정보가 그럴듯한 사실로 포장되었고 이를 믿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 브렉시트에 관한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는 가짜뉴스가 여론과 민의를 왜곡해 집합적 의사결정을 변질시킨 사례다. 당시 유럽연합(EU) 탈퇴를 지지하는 단체인 보트 리브는 ‘유럽연합 탈퇴로 본국에 돌아올 천문학적 분담금의 혜택’, ‘터키 난민의 대거 유입설’ 등의 가짜뉴스를 대대적으로 퍼뜨렸다. 통계청과 독립기관인 재정연구원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지만 투표 결과는 실제의 여론과 다르게 나타났다. 가짜뉴스 폐해는 학생들의 학업에까지 파고들었다. 영국 의회의 초당적 공동위원회와 리터러시 재단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초등학교 교사의 35%가 ‘학생들이 가짜뉴스나 허위정보를 바탕으로 과제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교사들의 60%는 ‘가짜뉴스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두려움과 불확실성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마저 가짜뉴스에 멍들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이 어디 영국뿐이겠는가. 외국 역시 가짜뉴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면서도 그들은 머리를 맞댔다. 최소한 가짜뉴스가 가져올 개인적·사회적 폐해와 대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비판은 상존하지만 1년여 동안 같이 고민을 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우린 어떤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가짜뉴스로 정권을 잡아놓고 지금은 가짜뉴스를 탄압한다’느니 ‘규제를 해야 되느니 마느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 와중에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확신에 찬 주장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규제 문제도 그렇다. 규제에는 타율규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율규제도 있다. 그럼에도 규제를 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어떠한 위험이 예견되든 정부는 그냥 손놓고 있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런 현실이야말로 탈진실 시대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조짐들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진실’과 ‘민주주의’에 대한 장례식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그때도 ‘그저 명복을 빌 뿐’이라 하고 말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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