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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국잡월드에서 ‘비정규직 대통령’을 다시 보고 싶다 / 조돈문

등록 2018-11-07 18:08수정 2018-11-07 19:36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비정규직은 지난 20여년간 노동시장 유연화 과정 속에서 꾸준히 확대되어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들이 비정규직 규모 감축을 앞다퉈 공약했던 것도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대통령 취임 즉시 제1호 업무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고, 이틀 뒤 비정규직 남용 사업장으로 악명을 떨치던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촛불 정부’의 ‘비정규직 대통령’을 보았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첨예한 공공기관이 많다. 한국잡월드, 한국가스공사, 한국마사회, 한국도로공사,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울산항만공사,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보라매병원, 발전 5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공공기관에서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고, 그들은 한결같이 자회사 상용직 방식을 반대하며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심각한 노사분규를 겪고 있는 한국잡월드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이다. 전시체험관 강사들은 상시적 업무를 담당하지만 한국잡월드가 아니라 서울랜드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서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한국잡월드는 2018년 사업계획에서 자회사 방식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외부 컨설팅단이 개입하며 지난 4월 돌연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방침으로 전환했다.

전시체험관 강사들은 자회사 방식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투쟁과 노숙농성을 하고 있지만, 한국잡월드 측은 자회사 채용전형 절차를 강행하고 있다. 11월8일 신규채용 서류접수가 마무리되면 자회사 설립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전시체험관 강사들은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는커녕 당장 대량해고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자회사 방식을 둘러싼 노사갈등은 한국잡월드나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공공기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용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결정 인원 가운데 자회사 방식에 해당되는 비중은 55%로 3만2514명에 이른다. 자회사 방식이 예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현재 자회사 방식으로 전환을 완료한 인원은 21%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자회사 방식을 둘러싼 갈등은 점점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자회사 방식이 남용되는 것은 지난해 7월20일 ‘관계부처 합동’ 명의로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공공기관의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식 가운데 하나로 자회사 상용직을 포함한 탓이다. 민간업체에서 공공기관 자회사로 고용주만 바뀔 뿐 여전히 사용자와 고용주가 불일치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임에도 정규직으로 둔갑한 것이다.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 방식이 자회사의 이윤과 관리비용 증대 등 별도의 거래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비용절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가이드라인도 인정하고 있다. 한국잡월드의 내부보고서도 자회사 설립 시 용역사업비 중 약 8억원 규모의 이윤과 일반관리비 가운데 약 5억원의 비용이 허비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공공기관들이 자회사 방식을 남용하는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직접고용 정규직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 격차로 알려져 있다. 공공기관들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거부하면서 상시적 업무의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 원칙까지 무력화시키게 된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은 얼굴 없는 ‘관계부처 합동’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장이 청와대 앞에서 삭발·단식을 하며 “대통령님, 답을 주십시오”라고 외친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한국잡월드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촛불정부의 비정규직 대통령을 찾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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