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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대체복무, 1.5배로 시작해 줄여나가야 한다 / 정재영

등록 2018-11-12 18:05수정 2018-11-13 09:23

정재영
병역거부 당사자 가족(서울시 중구 신당동)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에 대한 국방부의 안이 알려지면서 공방이 뜨겁다. 진정한 양심의 결정에 의한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라는 최고 법원의 판결 취지와는 반대로 더 긴 기간, 더 힘든 역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법원이 과감한 판례 변경을 통해 처벌 관행을 끊었지만, 국방부는 아쉬운 속내를 감추지 않고 징벌형 대체복무를 설계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악용자의 진입을 막기 위한 고육책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병역거부를 범죄로 규정한 국방부의 반인권적 사고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복무자와의 형평성 운운은, 처벌형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여론몰이 용어이지 공공재로서의 청년인력 배치와는 거리가 먼 구호다.

악용자 방지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근거 없는 주장이다. 해·공군은 복무기간이 2~3개월 길어 지원자가 감소할 때마다 유인책에 골몰하는 현실만 보아도, 현역의 2배 대체복무는 악용자에게 독배이지 꿀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수가 실익 없는 대체복무에 몰릴 것이라는 전제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단 극소수의 군 부적응자가 선택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당수 국가는 진입 장벽을 더 낮춰 부적합 자원을 걸러내는 제도로 활용하면서 군기사고 발생 원인을 근원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대만은 현역병에게도 대체복무 선택을 허용하고 있다.

병역이 신성하다고 공언해온 군복무자들이 이제 와서 대체복무를 군복무와 대등하게 만들도록 주문하는 것은 격이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군복무와 동일한 등가성 확보는 말장난일 뿐이다. 지뢰 매설 지역을 왕래하고 폭발물을 소지하는 대체복무를 만들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65년 만에 징역에서 풀려났는데, 숨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36개월 합숙을 요구하는 것은 적어도 처벌을 주도해왔던 국방부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라면 그동안의 처벌은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방부는 전향적인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65년간 병역거부자를 부당하게 처벌해온 관행에 대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대체복무자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청년들이다. 공동체를 위해서 더 긴 기간이라도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감지덕지하며 대체복무를 하라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진정 악용자가 늘어나서 국방이 무너질 것 같다면, 병역거부자를 둔 부모로서 제안을 하겠다. 우려가 기우가 될 때까지 자녀와 함께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안을 만들기 바란다. 대체복무 대기를 하고 있는 자녀와 함께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서 봉사하겠다. 근거가 없는 36개월은, 청년들의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에 장애가 되고 결국 국가 생산성 면에서도 손실이다.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국가 대부분은 복무기간 자체가 6개월 혹은 1년이기 때문에 최대 1.5배여도 24개월을 초과하지 않는다. 예들 들어, 러시아는 군복무 12개월에 대체복무는 18~21개월이다. 선호하는 역무의 경중에 따라서 월급과 기간이 다르며, 일반 노동법에 명시된 급료를 지급한다. 러시아가 대체복무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 한 수를 가르쳐주고 있다. 시작점은 최대 1.5배인 27개월로 해서 점차 줄여나가야 한다.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심술궂은 여우는 황새를 초대해놓고 음식을 납작한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부리가 긴 황새가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고만 있는 사이에 여우가 다 먹어치웠다. 2배라면 먹지 못하는 접시에 담긴 음식과 같다. 정당한 사유라는 판결에 의해 도입될 제도이기에 국제 규범인 1.5배 이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가공의 악용자를 막으려고 하늘 끝까지 담장을 높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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