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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브라질 극우 대통령 취임에 부쳐 / 폴 스니드

등록 2018-12-24 18:18수정 2018-12-24 19:16

폴 스니드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부교수

내년 1월 브라질 3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당황할 정도의 막말을 일삼는 극우파 정치인이다. 군부독재정권(1964~1985)의 고문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그들의 인권유린을 찬양했고, 여성 의원에 대해 강간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자신의 아들은 흑인 여성과 결혼할 수 없다는 등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큰 국가이자 세계 8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는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됐을까?

당선 과정만 보면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와 유사한 행보를 보인다. 스스로 정치 아웃사이더이면서도, 부정확하지만 거침없고 통렬한 비판을 원동력으로 대중에게 인기 몰이를 했고, 소셜 미디어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 협상에 능한 기업인임을 과시할 때, 군인 출신인 보우소나루는 갱단이 난무하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27년 정치 경력을 내세워 치안을 지켜주는 강력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보우소나루의 당선은 일차적으로 브라질 좌파의 실패의 결과이다. 2000년대 초반 브라질에서는 사회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 정권이 급부상했고, 좌파 지도자인 룰라 대통령이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두차례 당선됐다. 그러나 좌파 정권은 부패 스캔들로 국민을 실망시켰고, 무능한 정치로 경기 침체를 장기화시켰다. 결국 룰라 전 대통령은 돈세탁 혐의로 12년 징역형을 받아 수감됐고, 그의 측근이자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 역시 허가받지 않은 정부차관으로 잔고를 채운 것이 드러나 탄핵됐다.

보우소나루를 대통령으로 만든 또 다른 계기는 범죄에 대한 공포였다. 브라질은 높은 살인율로 온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그때 선거 유세 중이던 보우소나루가 정신이상자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을 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안한 브라질 사람들은 무자비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그를 부활한 영웅처럼 바라보았고,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그는 기독교인과 군인 등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회 불안을 일으키는 무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지지를 얻어냈다.

물론 보우소나루가 주장한 안전이란 사회의 갈등 요인은 그대로 둔 채 겉으로만 치안을 강화하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소수자를 탄압하는 방식으로 유지하는 치안은 결국 브라질 사회를 더 깊은 갈등에 빠뜨릴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브라질의 교육받은 사람들조차 그를 지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브라질 사회문화를 전공한 미국인 학자로, 한동안 리우데자네이루의 슬럼지역인 파벨라에 거주하며 브라질의 교육과 범죄조직에 대해 연구했다.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폭력을 앞세우는 ‘스트롱맨’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경도됐고, 실제로 많은 빈민들이 마약상이나 자경단에 자발적으로 복종했다. 보우소나루의 치안 정치를 국민들이 지지하게 된 데는 이런 약자의 심리가 깔려 있다.

브라질의 정치 상황은 전지구적으로 만연하는 양극화의 한 단면이다. 갈등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이기주의가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대립을 초래한다. 필자는 4년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이루고 남북 간 대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에 크게 고무됐다. 이를 보며 진정한 공존의 정치는 진실한 대화와 헌신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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