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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위기 청소년을 위한 근본적 지원방안의 필요성 / 최원훈

등록 2019-02-25 18:30수정 2019-02-25 19:09

지난해 9월 열린 학교 밖 청소년 진로박람회의 모습. 경기도 제공.
지난해 9월 열린 학교 밖 청소년 진로박람회의 모습. 경기도 제공.
지난해 청와대에 올라온 수십만건의 국민청원 중 가장 지속적으로 제기된 뜨거운 쟁점은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었다. 청와대와 사회부총리, 법무부 장관이 네차례나 답변했지만, 소년법 폐지 청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동안 비행청소년 문제는 소년법 개정 및 폐지를 통한 엄벌만이 일관되게 요구됐을 뿐, 비행청소년에 대한 이해와 근본적인 해결책 제시를 위한 사회적 고민이나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행청소년의 보편적인 심리적 특성과 관련해 ‘양가감정’과 ‘방어기제’라는 용어가 있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정반대의 상대적인 감정이 동시에 향하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비행청소년의 상당수는 결손가정 출신과 학교 밖 청소년들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버리거나 학대한 부모에 대해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을 지니면서도 평온한 가정에 대한 욕구와 그리움의 감정 또한 가진다. 학교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차별받았다는 억울함도 있지만, 교복과 교실에 대한 애착,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방어기제’는 자아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나 행위를 뜻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탈출하고 일탈한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학벌과 기술이 없는 학교 밖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오토바이 배달, 식당 서빙, 편의점, 주유소, 일용 노동 등으로 제한된다.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이 최저시급을 받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경쟁 사회에서 낙오됐다는 좌절감이다. 생활비와 또래 관계를 위한 유흥비, 장래를 생각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비를 벌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서,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범죄의 유혹에 비교적 쉽게 노출된다.

비슷한 처지의 비행 친구들과 어울리며 방어기제를 통해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된 감정적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비행은 확대·재생산된다. 아이들은 어린 나이 때문에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을 알고 소년법을 악용할 만큼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행하지는 않는다. 비행청소년들은 주변인으로서의 특성과 양가감정, 방어기제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따른 불안한 심리 상태로 인해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 범죄를 가정과 학교에서 포기한 일부 불량한 아이의 탈선으로 단순화하는 시각은 법을 폐지하자는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 외에는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라는 논점에서 멀어지게 한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향후 5년간 우리나라 청소년 비행예방정책의 청사진을 담은 제1차 소년비행 예방 기본계획(2019~2023년)을 발표했다. 청소년 강력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실효성 있는 소년범죄 예방대책을 마련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주요 내용은 위기 청소년 비행유입 차단, 초기 비행소년 선도 및 진단 강화, 소년범 재범 방지 역량 강화, 피해자 보호·지원체계 개선, 소년비행 예방 협력체계 구축 등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네차례나 20만명 이상이 참여해 답변을 받은 국정 현안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도덕과 윤리, 자존감이 채 수립되기도 전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생존이 시급한 환경에 내몰린 위기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로 돌아가려면 우리 사회가 건강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 실질적인 지원,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원훈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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