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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경·검 조서 차등 취급은 개선돼야 한다 / 김성택

등록 2019-03-06 18:01수정 2019-03-06 19:12

김성택
성남수정경찰서 형사과장

현재 비대하고 막강한 검찰권의 핵심은 검찰의 영장청구권 독점과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의 차별화에 있다. 원래 바람직한 형사법정은 법원에서 공격 쪽 검사와 방어 쪽 피고인과 변호인이 ‘법정에서’ 유리한 증거를 제출하면 법관이 공정하게 양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살펴 판결을 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형사소송법 제244조 1항의 ‘피의자의 진술은 조서에 기재하여야 한다’는 규정대로 법정 이전에 작성된 조서가 법원에 제출되고 있다. 조서제도 자체는 법관에게 무척 편리할 수도 있으나 진술자의 의도가 왜곡될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에, 조서제도를 대체하면서 공판중심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다른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찰이나 검찰 또는 피의자나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 중에 법정에서 검토될 자격이 있는 증거만이 검토되는 것인데, 이것을 ‘증거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와 검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능력 인정 방법이 하늘과 땅 차이이다. 경찰이 작성한 것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내가 말한 대로 써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지만, 검사가 작성한 것은 “사실대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습니다”라고 하더라도 “내가 말한 대로 써 있습니다”라고 한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증거로 인정된다.

본래 검사는 공소관으로서 법정에서 피고인과 대립하는 상대방이어야 하는데, 검사는 수사단계에서 직접 피의자를 조사하고 조서를 작성하면 법정에서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에 직접 피의자를 상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긴 조서가 그대로 증거가 되어버리니, 검사와 판사 모두 선입견이 생기게 되어 법정에서의 다툼이 중심이 되는 ‘공판중심주의’의 구현이 어려워지고 수사과정에서 무리한 자백 강요나 회유 등 중대한 인권침해의 위험이 상존한다.

마치 태권도 경기의 선수(검사)가 상대방 선수(피고인)를 경기 전에 미리 공격한 것을 점수로 인정해 본경기(재판)에 반영해준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니, 현재 형사법정에서 유죄 판결률이 매우 높은 현실을 볼 때 형사법정이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종전의 자백 중심 수사관행과 조서 재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검사 작성 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의 그것처럼,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대한민국 외에는 ‘경·검 조서 차등 취급’ 사례가 없으며, 이에 20대 국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발의안에서 모두 경·검 동일하게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능력을 인정받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경찰은 피고인의 내용 부인 시 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지는 제도 아래 일찍부터 객관적, 과학적 증거로써 피의자를 조사하는 인권 친화적 수사절차 구현에 애써왔다. 앞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검찰 또한 피고인의 자백을 얻어내는 데 치중하지 않고 과학수사를 통해 객관적인 증거로 범죄사실을 증명해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인권 보장도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범인의 혐의 입증이 곤란해진다는 반발이 있을 수 있으나, 경찰이 그리했던 것처럼 최대한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면서 작성한 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라면 법관이 피고인의 변명과 대조해가며 혐의 유무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자료가 될 수 있다.(이를 탄핵증거라고 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경·검 조서 차등 취급’ 개선이 실현된다면 국민 불편 및 사회적 비용(한국비교형사법학회, 연간 500억~1500억원 발생 추정)을 초래하는 이중조사 문제도 해결하고, 검사가 수사단계에서의 자백과 조서 작성에 치중하지 않고 법정에서 본격적으로 혐의 유무를 다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주의의 확립에 기여하고 인권 보장이 강화될 것이다.

형사법정에서 한 개인의 운명이 좌우되는 일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검사 작성 조서의 증거능력 차별이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지 않은가? 이 문제는 검찰개혁의 핵심이며, 인권 보호는 물론 공정한 형사법정을 만드는 첩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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