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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 목숨이 낙엽처럼 / 김훈

등록 2019-05-14 04:59수정 2019-05-14 21:40

소설가 김훈

고층건물 신축공사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일년에 270~300명에 달한다는 정부 통계가 티브이 뉴스에 나왔다. 금년 1월부터 4월까지는 100여 명이 떨어져서 죽었다고 한다. 부상당해서 불구가 된 사람은 더 많을 터이다.

뉴스를 보다가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놀랐다.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계산해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대형참사이고, 숫자가 적으면 소형참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꺼번에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면 대형참사이고, 동일한 유형의 사고로 날마다 한두 명씩 죽으면 대수롭지 않은 사고인가.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은 땅을 치며 울부짖고 노동을 관리하는 정부관리가 와서 손수건으로 눈물 찍어내는 시늉을 하고 돌아가면, 그다음 날 노동자들은 또 떨어진다. 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왜 떨어지는가. 고층건물 외벽에 타일을 붙이거나 칠을 하려면 건물 외벽을 따라서 비계를 가설해야 하는데, 이 비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비계 발판이 무너져내리거나 비계에 난간을 설치하지 않았거나, 비계를 외벽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허술했거나, 노동자의 몸을 외벽과 연결시키는 장치가 부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이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사고 원인이라는 것을 들여다보니까, 그 원인을 시정하는 데는 돈도 별로 들지 않고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비계바닥을 튼튼히 하고 나사를 똑바로 박아서 비계를 외벽에 튼튼히 고정시키면 되는 일이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최고급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갤럭시를 만들고 첨단유도무기를 만드는 나라에서 돈이 없고 기술이 없어서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는가.

돈과 기술이 넘쳐나도 한국 사회는 이 문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다. 내년에도 또 270~300명이 떨어진다. 이것은 분명하다. 앞선 노동자가 떨어져 죽은 자리에 다른 노동자가 또 올라가서 떨어진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 그랬으니, 내년인들 무슨 수가 있겠는가.

왜 바로잡지 못하는가. 나는 그 이유를 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집 도련님들이 그 고공에서 일을 하다가 지속적으로 떨어져 죽었다면, 한국 사회는 이 사태를 진작에 해결할 수 있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거나, 추경을 편성하거나, 행정명령을 동원하거나 간에,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층에서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늘 돈 없고 힘없고 줄 없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의 이러한 주장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권문세가나 부유층의 도련님들이 그 꼭대기에서 떨어져 죽은 사례가 없기 때문에 나는 방증 자료를 제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나의 생각은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70년 이상을 이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칙에 입각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이 사회는 5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니 내년이라고 무슨 별 볼 일이 있겠는가.

한국 사회가 이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경영과 생산구조의 문제, 즉 먹이 피라미드의 문제다. 재벌이나 대기업이 사업을 발주하면 시공업체가 공사를 맡아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하도급되고, 이 먹이 피라미드의 단계마다 적대적 관계가 발생한다. 이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고층으로 올라가고, 고층에서 떨어진다. 책임은 아래로 내려가서 소멸하고 이윤은 위로 올라가서 쌓인다. 모든 국민이 법률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헌법의 멋진 문장이 그렇다는 얘기이고, 지금 한국 사회는 신분이 세습되는 고대국가라는 것을 나는 이번에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 사태가 계속되는 한 4차 산업이고, 전기자동차고 수소자동차고 태양광이고 인공지능이고 뭐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앞으로 나갈수록 뒤에서는 대형 땅 꺼짐이 발생한다.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방안에서 벽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급히 몇 자 적어서 신문사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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