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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쇼트트랙 선수 성희롱 유감 / 안갑철

등록 2019-07-08 16:55수정 2019-07-09 14:27

안갑철
변호사

최근 겨울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한 쇼트트랙 선수의 성희롱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의 보도를 통해 확인된 사실관계는 암벽등반 훈련 중 피해자 선수의 바지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에 피해자 선수는 심한 충격을 받았고, 결국 선수촌의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퇴소 결정이 내려졌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가 아닌 전원의 퇴소 결정은 그 장면을 ‘웃음거리’로 여긴 다른 선수들의 태도도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사안이 이러하건대 가해자 선수의 변명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다. 처음에는 피해자가 기분이 나빴다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와 같은 행동에 대하여 인정하면서도 성기 노출까지는 아니었다는 다소 황당한 발언을 해서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피해자가 기분이 나빴다면 잘못된 행동이라는 기본 전제는, 가해자는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깔려 있다. 그리고 나중에 한 발언은, 성기 노출까지는 되지 않았으니 괜찮은 것 아닌가, 장난이었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있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다소 ‘꼰대’ 같기도 하다.

가해자의 행동은 매우 잘못되었다. 자신의 실력만 믿은 결과 도덕적으로 얼마나 해이해졌는지 방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어주었다. 언론은 가해자의 이러한 행동을 놓고 단순히 ‘성희롱’이라고만 한다. 아마 피해자가 추행을 당했지만 추행이라고 여긴 것 같지는 않다. 성희롱의 개념은 추행의 개념보다 넓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인 내가 볼 때 그의 행동은 명백한 추행행위다. 즉,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형법 제298조의 강제추행죄는 개인의 성적 자유라는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죄로서, 위 법규정에서의 ‘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인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의 상대방인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성별·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관계,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인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진다. 또한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사람을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그 폭행 또는 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을 요한다. 그리고 폭행 등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는 폭행 등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추행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이상 대법원 2012 7. 26. 선고 2011도8805 판결 참조)

강제추행에 있어서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실무상으로도 남성이 남성을, 여성이 여성을 추행하는 사례는 흔하다. 이 사건의 경우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암벽등반 훈련 과정에서 피해자의 바지를 벗겨 엉덩이까지 드러내는 행위는, ‘피해자의 바지를 벗겨 성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엉덩이를 드러내게 하겠다’는 내심의 의사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은밀하고도 내밀한 신체 부위가 드러났으므로 피해자는 엄청난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폭행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폭행의 의미와는 개념을 달리한다. 즉, 피해자가 손쓸 틈 없이 유형력의 행사(바지를 벗기는 행위)를 했으므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사건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아직은 젊은 나이의 친구가 저지른 한순간의 잘못이라는 변명도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세금이 그런 가해자에게 연금으로 쓰일 생각을 하니 매우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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