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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독소조항 정비해야” / 장세진

등록 2020-01-28 10:06수정 2020-01-28 18:42

장세진 ㅣ 문학·방송·영화평론가

지난달 20일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이 마감되었다. 컴퓨터 실력이 부족한 나도 더듬더듬해가며 가까스로 지원신청서를 냈다. 이제 결과를 기다려야 하지만, 지원신청서를 내는 과정에서 발견한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의 독소조항은, 설사 이 글로 인해 불리함이 생기더라도 반드시 짚어보고 싶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20년 공모부터 1차 심사(미발표 원고 심사)에서 선정한 2차 심사 대상자(최종 지원대상 수의 2배수 내외 선정 예정)를 발표”하는 것을 2019년과 달라진 점으로 알리고 있다. 그러니까 미발표 원고 심사로 예선 통과자를 2배수 추리고, 2차 심사에서 최종 선정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락 사실을 빨리 알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019년 공모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은 따로 있다. 2차 심사에 포함된 기발표 원고의 기준이랄까 범위가 그것이다. 이번 공모엔 “기발표는 문예지, 발간집 원고료 등을 받고 게재한 경우에 한해 인정함”으로 되어 있다. 이전에 없던 조항이다. 과연 전국의 수많은 문인들 가운데 원고료를 받고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이가 얼마나 있는지, 그걸 알고 그런 단서를 달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통계를 알진 못하지만 원고료를 받고 문예지에 작품 발표하는 문인이 전체의 1%쯤은 될까. 일간신문에 출간이나 수상 소식 등이 수시로 보도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등 이른바 잘나가는 이들이다. 그런 극소수 인기작가들에게만 국민 세금인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주겠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떠나지 않는다.

“동호회, 동인지 발표, 개인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 발표 등은 기발표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음”도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과거에 발간되었던 작품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은 불가능”이라고 했던 2019년 공모기준에서 확대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동인지 발표를 기발표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건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무슨 신춘문예 정도로 착각하는 듯한 태도라 할 만하다.

99%를 차지하는 지역의 많은 문인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주요 공간은 다름 아닌 동인지다. 서점이나 온라인 등에서 판매되는 문예지 자체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런 잡지들로부터도 청탁받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회비를 내가며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동인지를 기발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대다수 문인들의 현실을 간과한 조항인 셈이다.

고단하게 창작된 독립영화들이 밑거름 되어 천만 클럽의 상업영화들을 만들어내듯 문학도 마찬가지다. 동인 활동을 격려하고 육성해주진 못할망정 아예 발표된 작품이 아니라며 묵살하거나 문인 취급도 하지 않는 건 문제다. 문인 대다수가 아예 응모조차 해보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누구를 위한 기관인지, 왜 있어야 하는지 묻게 된다.

독소조항까지는 아니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내용도 있다. 우선 지원금액(1인당 1000만원)의 적용방식이다. 가령, 시집과 평론집을 비교해보자. 물론 장르 막론하고 영혼을 불사르며 뼛속까지 겪는 창작의 고통은 같지만, 출판비 등 현실적 측면에서 동일한 지원액이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지금처럼 모든 장르별 같은 금액을 유지하려면 차라리 지원금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낫다. 그리하여 지금보다 두 배 많은 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는 탈락자들의 상대적 박탈감 내지 상실감을 덜어주는 상책이 될 수 있다.

지원 창작 기간도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고 불필요한 것도 없애는 등 앞의 독소조항과 함께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대한 정비가 시급하다. 지난 정권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 적폐가 청산 절차를 거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의도했든 안 했든 위에서 지적한 것들은 블랙리스트 못지않은 독소조항이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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