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ㅣ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3월 시행되는 ‘민식이법’에 대한 운전자들의 걱정이 많다. 이제 어린이보호구역으로는 아예 차를 끌고 들어가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칫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과속이나 안전운전의무 소홀로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근거하여 무기징역 혹은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는 처벌규정 때문이다. 특히 과속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안 보이는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 많다. 경찰의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435건이고 이로 인해 3명이 숨지고 473명이 다쳤다. 앞으로는 크게 줄겠지만 이 숫자만 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운전자들이 민식이법을 오해하는 부분도 있다. 원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고의가 없는 만큼 형사처분을 면할 수 있었는데 이젠 무조건 형사처분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민식이법 시행 이전에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히면 법정 소송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아야 했다. 이미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히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여 형사처분 대상이었다. 다만 이번 법 개정으로 처벌 수위가 강화된 것이다. 예전 양형 기준은 5년 이하의 금고,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어서 실형을 면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실형을 면하기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법정에서 운전자가 안전운전의무를 다했다는 것을 입증한다면 실형을 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전운전의무를 다하는 것일까? 우선 어린이보호구역에 표시된 제한속도를 준수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많은 운전자가 잘 모르는 것이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이다. 도로교통법 제27조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을 경우 차량 운전자는 일시정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운전자가 횡단보도 위에 사람이 있더라도 적당히 지나간다. 특히 우회전할 때 만나는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멀리 있다면 그냥 진행한다. 이때 보행자가 모두 횡단할 때까지 기다리면 뒤따라오는 차로부터 경적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앞으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이런 식으로 운전하면 큰일을 당할 위험이 크다.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보이거나 건너려고 한다면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운전자 입장에서 애매한 상황이 있다. 횡단보도 주변에 주정차한 차량이나 신호 대기 중인 차에 가려 횡단보도를 보행자가 걷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 등이 그렇다. 민식이 교통사고의 가해 운전자도 정체 중인 차 때문에 갑자기 뛰어드는 민식이를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린이보호구역 안 횡단보도를 지날 때는 ‘무조건’ 일시정지 후 서행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횡단보도 위에 보행자가 보이건 아니건, 혹 뒤차가 경적을 울리더라도 일단 정지하는 편이 안전하다.
또한 편도 3차로 이상의 넓은 도로에서는 횡단보도 앞 차량 신호가 적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었다 하여 급출발해서는 안 된다. 횡단보도 위에 아직 횡단을 끝내지 않은 보행자가 있지만 옆 차량 때문에 보이지 않을 수 있어서다. 차량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어도 서행하면서 횡단보도를 지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혹시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가 차량 운전자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로교통규칙의 국제표준을 정한 빈(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일시정지나 양보 의무를 잘 지키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통 문화가 오히려 이상하다. 우회전할 때 일시정지, 실선으로 된 정지선에서 일단정지, 점선으로 된 양보선에서 서행을 하는 것이 국제적 표준이다. 하지만 이 규칙을 몰라 외국에서 교통경찰에게 단속되는 우리나라 운전자가 많다. 이런 면에서 민식이법 시행을 앞두고 운전할 때 일시정지와 서행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국가적 캠페인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지정된 곳에서는 일시정지와 서행을 하는 운전 문화가 자리를 잡아야 우리나라 교통 문화도 선진국 수준에 한층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