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영 ㅣ 대한간호협회 상임부회장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을 ‘세계 간호사, 조산사의 해’로 지정하였다.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간호사와 조산사가 국제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보편적 건강보장’을 실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세계보건기구가 간호사와 조산사가 국민 건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나, 우리나라의 간호 현실은 다르다.
소중한 보건의료자원인 간호사가 의료 현장을 조기에 떠나고 있다. 지난해 12월1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나듯 간호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이나 간호대 졸업생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나, 면허 간호사 대비 임상 간호사 비율은 오이시디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전체 면허취득자 중 절반이 되지 않는 간호사만이 임상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인 중 직업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무엇보다 간호사의 가혹한 근무환경이 원인이다. 간호사의 주된 이직 사유는 낮은 보수 수준(21.2%), 과중한 업무량(15.5%), 열악한 근무환경(10.3%) 등으로 나타났다. 가혹한 근무환경은 이직의 주된 사유가 될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기 이직의 또 다른 요인으로는 의료법상 엄연한 전문의료인인데도 보건의료 현장에서 단순 보조인력으로 취급하는 전근대적인 인식이 문제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간호 관련 80여종의 법제와 무관하게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 등과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있다.
건강은 인류의 보편적 소망이다. 국가는 국민의 지불 능력과 관계없이 필수 보건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강화,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오이시디 국가에 비해 낮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복지선진국 수준의 건강지표를 달성한 국가다. 그러나 고령인구의 빠른 증가와 만성질환 중심으로의 질병구조 변화, 새로운 의료 기술의 발전과 국민의 의료 욕구 증가가 의료 비용 증가의 잠재적 원인이 되고 있다.
향후 보건의료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며, 이러한 예방 중심의 건강관리체계 구축의 핵심 보건의료인력은 간호사다. 건강증진·질병예방 활동, 노인·장애인 등 의료취약계층 돌봄서비스 제공, 호스피스 등에서 전문의료인인 간호사의 적극적 활용은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고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2020 세계 간호사의 해를 맞아, 우리나라도 간호사들의 근무환경이 획기적으로 조성되어 간호사가 자긍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전문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국민 건강에 이바지하고 보건의료의 지속가능성에도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