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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와중에 ‘죽도의 날’ 행사 한 일본의 기억 / 최운도

등록 2020-02-24 18:33수정 2020-02-25 02:07

최운도 ㅣ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

“‘지도자를 따르라’고 배운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은 지도자가 하라고 하면 두 눈 감고 행동에 옮기도록 배웠다.” 2차 세계대전 뒤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일본에서의 우리의 임무>(Our Job in Japan)라는 제목의 홍보영화를 병사들 교육용으로 상영하였다. 수만명의 일본인 군중이 운동장에 모여 구령에 맞춰 한쪽을 향해 절을 하거나 한꺼번에 칼을 뽑는 모습의 영상들이 나온다. 위는 그 영상들과 함께 나온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일본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그 생각을 바꾸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말한다.

일본은 매년 2월22일이 되면 시마네현 주최로 우리 땅 독도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죽도의 날’ 기념식을 거행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3월16일 시마네현 의회가 조례로 2월22일을 죽도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렇다면 왜 2005년에야 그 기념일을 제정했을까? 시마네현이 1905년 2월 고시를 통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의회의 설명이다. 사실일까? 답을 얻기 위해서는 2005년 전후 일본 사회의 상황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경제 절정기를 구가하던 일본은 1991년 버블의 붕괴와 함께 긴 불황의 터널에 돌입하였다. 그로 인한 ‘좌절감’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낳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익들이 전후의 역사 반성을 주도해온 교과서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더니 1997년에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출범시켰다. 2004년에는 패전 이후 처음으로 자위대 관련 전시대비법 체계를 완비하였다. 극우의 선봉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도지사에 선발되고, 남태평양으로 1740㎞ 떨어진 암초 오키노토리시마에서 일장기를 흔들어댄 것도 2005년의 일이다. 죽도의 날은 일본 사회 우경화의 반영이다.

뒤에는 죽도문제연구회가 있었다. 그 연구회가 제시하는 독도 편입의 과정은 우익들이 일본 국민들을 얼마나 오도하고 있는지, 얼마나 역사의 오점을 숨기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 스토리의 주인공인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가 강치잡이 독점권을 획득하고자 내각으로부터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에 대한 승인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행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러일전쟁이나 한일의정서 등과 같이 동해를 둘러싸고 진행된 역사적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양 설명한다. 일본이 이전부터 고기잡이를 해왔다는 것과 주인이 없었다는 주장뿐이다. 조선의 수토 활동, 1900년의 대한제국 칙령 41호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죽도문제연구회의 좌장 시모조 마사오는 ‘죽도의 날’은 지자체와 지방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인 양 설명한다. 그러나 행사 정식 명칭은 ‘죽도의 날 기념식전, 죽도·남쿠릴열도 반환요구운동 현민대회’였다. 제목만으로도 이 행사가 일본 정부 및 우익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시마네 현민들은 외무성과 죽도문제연구회가 제시해준 행사 취지를 진실인 양 따르고 있다.

패전 이후 70여년. 죽도의 날 행사를 보고 있노라면 점령기의 그 흑백영화가 생각난다. 일본은 70여년 전의 패전은 잊고 100년 전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소위 ‘죽도의 날’도 그 추억 더듬기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 모두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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