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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신천지와 우리 / 안지섭

등록 2020-02-24 18:42수정 2020-02-25 02:08

※ 이 글은 독자투고 입니다.

안지섭 ㅣ 한신대학교 철학과 4년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다. 2월 중순 바이러스의 위세가 점차 소강상태에 이르는 것처럼 보이더니, 31번 환자와 대구를 중심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요즘 사람들에게서 입 모양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사람들은 저마다의 눈빛으로 서로에게 불신의 눈빛을 보낸다. 목이 갑자기 메어도 헛기침 한번 하기 힘들다. 마른기침이 주된 증상이지만 혹시나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람들의 눈이 화살처럼 내 몸에 박힐까 봐 무섭다.

23일 신천지가 “우리도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라며 신자에 대한 혐오와 불이익을 멈춰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런 간곡한 부탁과는 반대로 여론은 현실의 답답한 숨을 가상 공간에서 토해내듯, 엄청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신천지 신자들에게는 “감염보다 신밍아웃(신천지+커밍아웃)이 더 무섭다”는 전언도 있다. 또 자가격리된 신자들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과연 신천지는 그만큼 잘못을 했던 것일까? 참고로 나는 신천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신천지가 코로나19의 ‘한국식 대유행’에 기여한 점은 어깨가 겨우 닿지 않을 정도의 공간에서 대규모로 예배를 했다는 것이다. 이만희 총회장이 신도들을 대상으로 신앙치료(과학적인 치료를 거부하고 종교적인 방법으로 질병 치료를 시도하는 행위)를 강요한 것도 아니다. 31번째 환자가 진료를 거부한 것으로 대다수 언론들이 보도했지만, <한국일보>에 따르면 그는 “검사를 거부한 적 없다”고도 한다. 이는 차후 진상조사를 통해 확인하면 될 일이고, 우선은 대중도 의료진 못지않게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처에 골몰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입에서 놓을 줄 모른다. 나는 그 원인을 우리 사회가 맹신을 지독히도 경계하는 태도에서도 찾고 싶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현대사는 맹신과의 대결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해방 이후 냉전 반공주의부터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꼰대 권위주의 담론까지 모두 우리 사회가 갖고 있었던 맹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쉽게, 우리들의 마음속에 신천지가 맹신의 주체로 새겨지고, 이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대상으로 새겨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들의 종교가 코로나19는 아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을 했을 뿐. 그들의 신앙 대상이 유행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는 힘들다. 대신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그들의 ‘맹신’을 비판하기 위해 손쉽게 우리 스스로 또 다른 맹신을 품고 있었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성급한 판단은 도리어 다른 문제를 양산한다. 다만, 현재까지도 소재 파악이 안 되는 유증상자와 접촉자는 하루라도 빨리 방역 당국에 협조하고, 신천지는 이번 확산에 공간적 빌미를 제공한 만큼 증상이 있는 신도들을 인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우리 언론도 지나치게 신천지를 매도하고 있지 않나 싶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기 두려운 신자들은 오히려 숨게 된다. 그러면 코로나의 확산세는 더 멈추기 어려울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유행병이라면, 혐오는 우리 사회의 기저질환이다.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일수록 유행병에 치명적이지 않나. 모두 마음속 어떤 맹신을 갖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이 글은 독자투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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