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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민’의 건강보험인 이유 / 김용익

등록 2020-04-23 10:08수정 2020-04-23 11:04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오는 줄도 몰랐던 봄이 어느새 무르익어가고 있다. 처음 겪어보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질서 있고 참여율 높은 선거를 치러냈고 코로나19도 안정적 수준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이제 생활방역의 새로운 모형을 정착시킬 수 있으면 한국은 감염병 관리의 최첨단 국가로 명성을 굳히게 될 것이다. 방역당국의 체계적인 대처와 의료진의 헌신, 그리고 높은 국민의식에 힘입은 바 크다.

코로나19로 국가재난이 선포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목이 집중됐다. 하나는 역할, 또 하나는 긴급재난지원금 때문이다.

감염병 관리체계는 예방과 치료로 구성된다. 공단은 진료비의 80%를 책임진다. 20%는 정부 부담이니 본인 부담 진료비는 ‘0원’이다. 진료비 지원에서 국민들 만족도는 절대적이다. 증상이 가벼운 환자 330만원, 중증 환자 1200만원, 위급한 환자는 7000만원가량의 진료비가 들기 때문에 만일 국민들이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면 코로나 대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본인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부담해야 한다고 하니 그 차이는 압도적이다. 또한 건강보험은 코로나19 확진자의 기저질환을 확인하여 중증도 판단의 결정적 자료를 지원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국민과 의료기관들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 공단은 소득하위계층과 특별재난선포지역에 3~5월분의 건강보험료 부담을 낮추는 방법으로 총 1160만명의 국민에게 3개월간 1인당 평균 9만원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병·의원에는 진료비를 미리 지급해주어 의료기관의 경영을 지원하고 있다. 일상적인 의료활동이 위축되면 코로나가 아닌 다른 병으로 인한 건강피해가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의료기관이라고 해 코로나 사태에 기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30일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소득기준을 건강보험료로 하여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가구당 합산액이 소득하위 70% 이하인 경우에 재난지원금 대상이 되도록 하고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국민들은 선정기준에 속하는지, 어떤 등급에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정기준인 보험료가 최근의 소득을 올바로 반영하는지에 대하여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 지적은 보험료 부과 자료의 시점 차이 때문이었다. 기준으로 삼으려는 올해 3월 보험료는 지역가입자와 100인 이하 사업장 직장가입자는 재작년 소득, 다른 직장가입자는 지난해 소득을 기준으로 부과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소득, 더구나 코로나19로 급격히 줄어드는 소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국민들과 사업장이 세무당국에 소득을 신고하고, 세무당국은 연도별 신고소득을 정리하여 공단에 통보한다. 공단은 이를 보험료 부과의 근거자료로 다시 구성해야 하기에 불가피하게 1∼2년의 시간차가 나게 된다. 시점 차이는 평소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년, 2년 순연되어 반영되는 것일 뿐, 결국 본인의 보험료 총액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소득을 1년, 2년 전의 자료로 판단하려고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소득 변화에 따른 보험료 반영은 가능하다. 현재도 공단은 소득이나 재산의 변동을 신고하면 즉시 소급하여 보험료를 조정해주고 있다. 다만 현재와 같은 특수 상황, 즉 엄청난 규모의 대상자를 단기간에 선별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크다.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소득기준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보험료의 출발점이다. 이 때문에 이전부터 공단은 오랫동안 보험료 개혁을 준비해왔다. 그 결과물이 2018년 7월부터 시행된 보험료 부과체계 1단계 개편이다.

1단계 개편은 크게 세가지의 중요한 부분에서 큰 진전을 이루어냈다. 지역가입자의 성과 연령을 근거로 했던 평가소득을 폐지하고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의 비중을 크게 낮추어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형평성을 높였다. 상위 1∼3%의 고소득자와 고재산자는 인상하고 대다수 지역가입자는 인하하여 부유층과 서민의 보험료를 공평하게 했다. 경제여력이 충분한 피부양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하여 수준에 맞는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그 결과 국민을 울렸던 ‘송파 세모녀’와 같은 가구는 4만7060원에서 1만3100원으로 보험료가 낮아졌다.

놀라운 점은, 우려와 달리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하게 된 가입자들의 항의 등 불만이 매우 적었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보험료 불만 민원은 개편 전보다 14% 감소했다. 오랜 준비와 올바른 정책방향에 국민들은 충분한 이해를 보여준 것이다.

첫 개혁에서 두가지가 매우 아쉬웠다. 소득 부문에서 금융이자소득 일부와 일용근로소득이 잘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일용소득자 중에서 중위소득 이상의 고소득 프리랜서 등이 72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구조의 급변은 새로운 직업의 생성과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일으킬 것이다. 이 점에서 일용소득의 파악은 특히 중요한 과제가 된다. 다른 한가지는 자영업자 소득을 보험료에 반영하는 속도가 직장가입자보다 1년 느린 부분을 고치는 것이었다.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성취하지 못하고 이번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2022년 7월을 목표로 2차 보험료 개혁안을 다듬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한국이 가장 모범적으로 그 터널에서 빠져나오리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다.

코로나19 재난 앞에서 공단이 의료활동을 뒷받침하고, 환자들의 막대한 진료비를 부담하고, 낭떠러지에 선 가입자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성실히 보험료를 납부하고 건강보험을 지지해준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함께 만든 건강보험이 다시 국민들을 살려내고 있다. 건강보험은 그들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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