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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새로운 교육을 꿈꿀 수 있겠는가 / 하태욱

등록 2020-05-11 18:17수정 2020-05-12 14:57

하태욱 ㅣ 건신대학원대학교 대안교육학과 교수

코로나19 사태가 서서히 정리 단계로 진입하고 학교도 순차적으로 출석 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의 시대를 맞으면서 우리는 과연 학교란 무엇이며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는가, 이런 본질적인 문제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학교가 열리고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면서 이 중요한 물음이 시나브로 묻히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면 코로나19 이후의 교육은 과연 바뀔 수 있는가 여부가 바로 이 질문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개학 연기와 온라인 개학을 보며 구한말 강제 개항의 역사가 떠올랐습니다. 디지털 시대라거나 4차 산업혁명 같은 말들이 마치 협박처럼 우리 사회를 떠돌아다녔지만 누군들 이런 온라인 개학 사태를 예견이나 했겠습니까? 막상 이런 시대가 닥치고 나니 진작부터 온라인 교육을 강화했어야 한다는 개항파부터, 외국의 특정 교육프로그램이나 제도가 우리 교육을 구원할 것이라는 해외파, 아이들은 무조건 아날로그적으로 길러야 한다는 쇄국파까지 주장들이 난무합니다. 그 와중에 교사들은 교육방송(EBS)과 온라인 사교육 시장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습니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선생님들께는 더 죄송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온라인 시대가 지속된다면 그리고 여전히 교육의 중심이 ‘지식의 전달’에 한정된다면, 디지털 에듀테인먼트에 최적화된 소위 ‘강의의 신’ 한두 사람으로 교육은 충분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느 교사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와주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더라는 거죠. 기껏해야 애들이 학교에 오고 싶은 이유는 친구와 놀이고, 학부모들도 세끼 식사와 돌봄이 가장 현실적인 이유더라는 겁니다. 과연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학생들에게 학교는 꼭 와야 하는 곳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신 없습니다.

그래도 배울 건 배워야지,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진짜 배울 게 무엇인지 짚어봅시다. 제가 35년 전 중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영어 선생님은 “사전을 씹어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스마트폰이 즉석에서 통번역해주는 시대에 와 있지요. 이런 시대에 영어 교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단순히 내 귀에 한국말로 들린다고 해서 소통이 되려나요? 오히려 다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다른 존재와 소통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요? 결국 미래를 맞이하는 영어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단어와 문법이 아닌,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어떤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질문 없이 단순히 ‘물리적 학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 사태에 우리 교육이 배워야 할 중요한 지점들을 놓치는 것이 될 겁니다.

이번 사태에 학교가 가장 절박한 아이들은 바로 학교가 피난처였던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학교로 도망 왔던 아이들이죠. 온라인으로 지식교육은 강화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학교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건 양극화 시대 매우 일부 계층의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개입하는 전 국민 대상의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의 기원을 들여다보면 이미 그 시발점에는 (학대나 아동노동으로부터의) 아동 보호와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온라인 시대일수록 공공적 고민은 ‘관계’에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이 점심 급식을 잔뜩 짊어지고 8㎞를 걸어 학생들 가정을 매일 돌고 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교사로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 했다네요. 학교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단순히 교육방송의 안정적 접속이나 학교 출석 수업 개시 여부로 교육의 ‘정상화’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것, 기르는 것, 돌보는 것, 다시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대안학교를 넘어선 교육적 대안, 혁신학교를 넘어선 학교의 혁신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단순히 학교 운영에 교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학생들에게 주는 알량한 수준의 자치권에 그치지 않고, 학습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배움과 삶의 주인(民主)이 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야 합니다. 학교를 넘어 마을과 함께 관계와 소통의 교육을 함으로써 배움과 삶이 맞닿을 수 있도록 하는 틀은 어떻게 가능할지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 관리 체계, 투명성, 민주주의, 교육의식, 관계와 돌봄, 소수자와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 대한 교육적 정책까지 종합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교육의 코로나 사태는 끝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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