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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민식이법,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성낙문

등록 2020-05-20 17:55수정 2020-05-21 09:22

성낙문 ㅣ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식이법’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법의 폐지 혹은 개정 청원에 이미 40만 이상이 동의하였다. 논란의 핵심은 법의 비례성 위배와 이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 양산 가능성이다. 내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깔려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의 자동차 통행을 아예 금지하라는 주장에서부터 어린이보호구역을 피해 가는 앱과 별도의 스쿨존 보험상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니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민식이법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법은 두 갈래로 구성된다. 하나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교통안전시설물 설치의무 규정, 다른 하나는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다. 이 중 전자는 잘 뿌리내렸고, 후자는 논란에 휩싸였다.

가중처벌 규정은 아주 강력하다.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500만원에서 3천만원의 벌금이나 1년 이상의 금고형을, 어린이가 사망이라도 한다면 벌금 없이 무기징역 혹은 3년 이상의 금고형을 받는다. 앞으로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커다란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교통사고에 대한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대개 그러하듯 극약처방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법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들은 부작용의 결과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스쿨존 관리가 극약처방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가? 교통사고 데이터를 보자. 지난 15년(2004~2019) 동안 12살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한해 946명에서 26명으로 약 97% 감소했다. 이와 같은 성과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 대책은 개발도상국에 벤치마킹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안전 수준에 대해 시큰둥해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안전 선진국조차도 어린이 교통안전 대책만큼은 성공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을 타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뺑소니범 수준의 가중처벌인 만큼 사고의 원인과 죄의 크기도 명확해야 한다.

하지만 교통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이다. 운전자의 잘못이 명확한 예도 있지만 대개는 보행자나 도로 환경 혹은 자동차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실제 원인 규명이 불가능하거나 불명확한 예도 부지기수다. 통계상에 안전운전의무 위반으로 두리뭉실하게 분류된 60%의 교통사고가 이에 해당한다. 법과 판결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을 거란 의미다.

“운전자가 안전운전 규정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교통사고 시 운전자의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규정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힌 교통사고 중 고의성이 있거나 잘못이 명확한 위반행위만을 가중처벌 대상으로 한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미 가중처벌 대상에 포함된 음주, 뺑소니 외에 과속, 무면허, 신호위반 등 고의성이 있거나 잘못을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는 4~5개 정도의 교통법규 위반행위가 그 대상일 것이다.

끝으로 이것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보행자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큰 틀의 법 규정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수많은 대책과 재원을 쏟아내면서 고령자 교통사고에는 무섭도록 무관심한 게 우리의 현주소다. 지난해 65살 이상의 고령자 1550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으며 이 중 754명이 보행 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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