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원희룡 지사의 기고에 부쳐: 동물원을 짓겠다는 제주 / 은종복

등록 2020-06-08 17:27수정 2020-06-09 09:44

은종복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인문사회과학책방 제주풀무질 일꾼

지난 6월4일치 <한겨레>에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쓴 글 ‘거주불능의 지구를 넘길 텐가’를 읽고 마음이 아팠다. 그 글에서 원 지사는 사람과 자연 등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나는 지난해 6월 서울에 있는 책방 ‘풀무질’을 젊은이들에게 넘겨주고 제주도 조천읍 선흘2리로 집을 옮겼다. 그곳에 대명건설이 17만평 가까운 땅을 사들여 동물원을 만들려 한다. 내가 사는 집에서 700m 떨어진 곳에 호랑이, 사자, 코끼리 같은 동물들 30여종 500마리 가까이를 가져온다. 제주 선흘은 생태습지마을로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올라 있다.

나는 서울 도시 삶을 떠나서 조용하게 제주도에서 살고 싶었다. 마음이 아팠다. 선흘 마을에서는 지난해 봄에 ‘대명동물원반대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나도 매주 열리는 모임에 나갔다. 동물원반대대책위는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만든 단 하나의 공식기구다. 선흘2리 이장이 동물원을 만드는 일에 찬성을 하자 마을 사람들은 총회를 해서 이장을 자리에서 몰아냈다. 하지만 조천읍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흘2리 향약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이장을 해임하려는 총회는 이장만이 열 수 있다는. 어느 이장이 자신을 몰아내려는 일에 스스로 총회를 열겠는가. 대통령도 국민들 뜻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쫓아낸다. 마을 사람들 뜻을 어기고 동물원을 짓는 협약서에 마을 관인 도장이 아닌 개인 도장을 찍어 몰래 찬성을 한 마을 이장은 지금도 버젓이 어깨를 펴고 다닌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한다. 이장과 대명건설 쪽은 김앤장, 세종 같은 대형 법률회사를 대리인으로 써서 마을 사람들을 옥죈다. 마을 사람들은 호주머니 돈을 모아서 재판 비용을 대지만 한숨만 나온다. 선흘2리 향약은 헌법보다 더 세고 마을 사람과 자연에 맞서려고 서울에 있는 큰 법률회사를 쓰니 가슴이 터질 듯이 아프다.

이런 일 꼭대기에는 원희룡 도지사가 있다. 선흘2리에 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마을에 동물원이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는지. 원 지사는 갈등조정전문가를 보내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들 목소리를 듣겠다고 한다. 마치 마을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서 팽팽하게 맞선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희룡 지사에게 묻고 싶다. <한겨레>에 쓴 글처럼 코로나바이러스는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옮겨 온 것일 수 있다. 동물을 가두어놓고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만드는 동물원을 지으려는 일에 찬성하는가. 만약 선흘에 동물원이 들어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선흘에는 꿩, 노루, 고라니, 제비, 까마귀, 까치, 참새, 뻐꾸기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팔색조, 두견이도 있다. 고양이, 개와 함께 사는 집들도 많다. 아프리카에 사는 호랑이, 사자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 7㎞ 안에 있는 다른 동물은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와 냄새로 주눅이 들어서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온 동물들도 안개와 습기가 많은 이곳에서 살기 어렵다. 동물이 행복하게 살아야 사람도 행복하다.

원희룡 도지사는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제주도에 일어나는 자연을 더럽히는 개발을 멈춰라. 지난달 27일에는 제주 송당 비자림로에 있는 30~40년 나이의 삼나무 300여그루를 베었다. 그곳에도 천연기념물인 팔색조가 있다. 제주2공항을 지으려고 안달이다.

원 지사 글엔 깨끗하고 안전한 제주가 자랑처럼 그려져 있다. 행동은 그렇지 않다. 그는 다음에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꾼다. 거짓말하는 도지사는 필요 없다. 거짓말하는 대통령도 필요 없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