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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6·15 20주년’의 위기: 북쪽의 길 / 한용섭

등록 2020-06-15 18:35수정 2020-06-16 02:39

한용섭 ㅣ 국방대 교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요즘 남한에서 인기를 휩쓸고 있는 트로트 노래이다. 이 노래는 요즘 북한에도 딱 맞는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만찬 테이블에서 모 북한 인사가 남한의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갑네까?”라고 소리 질러서 우리 기업인들의 분노를 자극한 일이 있다. 남한 기업인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핵 문제가 해소되면 이뤄질 대규모 남북 경협을 탐색하러 가지 않았던가? 당시 소리를 지른 이는 현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되어 있다.

그런데 북한의 김여정이 남북관계 파탄 협박을 가하고 나오자, 평양 옥류관 주방장마저 우리 정부 대통령을 욕하고 나섰다. 이때 해주고 싶은 말은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이다. 2년 전 우리 기업인에게 모욕을 주었던 이가 외무성 부상이 되었다고, 식당 주방장도 한 자리 차지할 생각인가?

북한은 냉정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이 사면초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 진정으로 참고할 사항이 있다.

1994년 제1차 핵위기 때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과 제네바에서 협상할 때에 북한 외교의 달인 강석주를 회담 대표로 임명하고 외교부(현 외무성)의 국제조약 담당자와 미국 전문가들로 협상팀을 꾸렸다. 1993년 초에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을 압박하며 특별사찰을 결의했을 때에, 김정일은 외교부 국제조약 담당자의 건의를 받고, “북한의 최고 리익이 침해된다고 생각하면,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의 북한식 번역)의 10조 1항에 따라 핵전파방지조약을 탈퇴하라”고 말했다. 북한은 엔피티 탈퇴를 선언하고, 미국을 코너에 몰아넣었다. 미국은 북-미 직접 협상을 거부해 왔었지만, 북한이 미국의 국가이익이 핵비확산 체제의 수호라는 것을 알고, 엔피티 탈퇴와 재가입을 협상카드로 발굴해, 협상의제를 엔피티 복귀로 바꾸어 버렸다. 강석주는 갈루치를 상대로 엔피티 복귀, 흑연감속로의 경수로로의 대체, 미국으로부터 중유 요구 등 북한이 핵무기를 30개 내지 60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장하여 대미 핵협상에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노동신문>에서는 “북한 외교의 대승리”라고 찬사를 쏟아부었다.

지금은 북한이 남한에 욕설 퍼부을 때가 아니다. 남북한 간에 생긴 일은 남북한 간에 정상회담, 특사 교환, 남북 군사공동위 중 하나를 개최하여 조용하게 논의할 일이다.

일방적으로 욕설만 해서는 북한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욕설과 협박에 대해 면역이 생겼다. 우리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대북 지원의 길이 열린다. 우리 대통령을 욕하면, 오히려 대북 지원의 길이 멀어질 수 있다.

북한이 대미국 협상의 문을 닫기 전에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김정일 시대에 대미국 협상 귀재들을 외교부에서 찾아내어 활용함으로써 협상 승리를 쟁취했듯이, 대남 욕설통 대신 대미 협상통으로 외무성을 채우고, 대미국 협상의 전면에 내세워서 1994년 대미국 협상 승리를 재현할 길을 찾는 것이 역사에 남을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은 미국의 국내정치에서 코너에 몰린 트럼프를 잘 분석하여 활용할 방법을 찾아내어야 한다. 비밀 특사 혹은 외무성 대미협상팀을 보내어 핵협상을 제의하면 의외의 수확을 얻을지 어떻게 아는가. 코로나 때문에 엔피티 50돌 유엔평가회의도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수십개 가지고 있다. 1994년과 비교하면 협상카드가 너무 많다. 이러한 때에 남한에 대해 욕설로 시간을 허비하면 황금 기회를 놓친다.

엉뚱한 사람까지 나와 구태의연한 대외 욕설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대화로 살길을 찾기 바란다. 대미 협상 전문팀을 찾아서 미국과의 핵 타결에 나서서, 김정일 시대의 대미 협상 대승리를 김정은 시대에 재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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