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 ㅣ 서울대 중문과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
온통 코로나19 이야기다. 당장 급한 대응이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다. 여전히 긴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가적 위상이 올라갔다는 자부심도 준다. 반면에 예산당국은 추경 등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내년도 예산 감축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세상 누구나 자신의 일이 중요하고 그 일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를 전후로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인간은 살아야 하고 사회는 여전히 존속해야 한다. 급한 불은 꺼야 하지만, 결국은 인간 사회의 문제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20여년 우리나라는 바이오 분야 연구에 많은 투자를 했고,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오고 나서야 그 성과를 확인했다. 이처럼 연구에 대한 국가의 투자는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코로나19 속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 모습은 수십년 동안 학교 안팎의 교육에 투자한 결과이다. 더 살펴보면 이 교육의 성과에는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의 성과가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 분야의 많은 연구는 당장의 산업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나 연구의 성과는 교육으로 반영되고 그 교육이 성숙한 시민을 만들어냈다.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는 과학기술이 앞장서고 그것을 뒷받침한 인문사회의 역할도 중요했다.
그럼에도 인문사회의 연구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사회 연구가 가져온 우리 사회의 변화를 생각하면 아쉬운 수준이다. 그동안 시민혁명과 코로나19 상황에서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나, 영화 <기생충>이나 방탄소년단(BTS) 등의 문화산업에 깊은 영향을 준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즉각적으로 경제적 효과를 보이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인문사회 분야 국가 연구비를 집행하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분야 연구비 예산은 올해 기준 2400억원 남짓으로, 국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 24조2000억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미미하다. 더구나 과학기술 연구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주된 업무이기 때문에 항시 관심을 갖고 예산을 확장해가지만, 인문사회 연구비는 방대한 업무를 하고 있는 교육부 내 한 부서의 일일 뿐이다.
인문사회 분야를 바라보는 예산당국자는 끊임없이 즉각적 성과를 요구하면서 장기적인 연구의 가치와 성과를 바라보지 못한다. 대단히 근시안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 효과가 20여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발휘되어 국가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는 것처럼, 인문사회 분야 연구에 대한 투자 역시 단기적인 성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인간과 사회는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