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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최저임금은 사회서비스노동자의 ‘생계안전망’ / 함미영

등록 2020-06-24 18:17수정 2020-06-25 02:07

함미영 ㅣ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보육지부장·민주노총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

나는 보육교사이자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으로서 공공부문의 모든 저임금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지난 10여년간 국가가 저임금으로 양산한 80만 사회서비스 노동자를 대표해 2021년 최저임금 심의에 임한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인건비는 나라에서 조성해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과 공기 같은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자 대다수가 최저임금을 받는다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먼저 전체 어린이집의 80%인 민간어린이집에 근무하는 17만 보육교사가 그렇다. 이들은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똑같이 최저임금 기본급을 받으며, 나 역시 근무 시절 줄곧 최저임금을 받았다. 38만 요양보호사와 9만 장애인활동지원사의 인건비는 매년 당연하다는 듯 최저시급에 맞춰지며 경력 반영 역시 없다. 국가는 지원만 하고 실제 임금 지급은 민간기관장의 권한이라 국가가 정한 인건비를 다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상 최저임금 미만자도 허다하다. 재가요양보호사는 3시간 ‘쪼개기 압축노동’에 내몰려 쉽게 계약시간을 초과해 일한다. 교대인력이 부족한 어린이집과 요양원에서도, 일대일 호출노동자인 장애인활동지원사에게도 매일 ‘가짜 휴게시간’만큼의 무급노동이 발생한다.

이런 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인상 외에 임금 인상의 기회가 없다. 국가는 매년 최저임금 산출 근거로 실태생계비를 조사하는데, 이때 34살 미만 등 저연령층의 실태가 중시된다. “최저임금 특성상 노동시장 최초 진입 계층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한다. 일할수록 임금이 인상될 것을 가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노동시장은 이미 전 연령에 걸쳐 최저임금만 받도록 짜여 있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이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생계에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특히 여성이 이런 대우를 감수하도록 요구받는다. 95% 이상이 여성인 사회서비스 노동자는 전문성이 낮아 임금 인상은커녕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하고 시간을 쪼개 일하기를 선호하며 집안에선 부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주입받는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를 짓누른 지난 2~3월은 매년 다가오는 보육교사 ‘물갈이’ 시즌이었다. 올해 그 ‘물갈이’엔 코로나19가 좋은 핑계가 됐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영문 모를 통보에 워낙 익숙한 탓에 코로나19로 인한 일거리 중단 상황을 자연스러운 대기 기간으로 받아들이는 요양보호사도 많았다. 특히 보육지부장으로서 나는 ‘코로나 때문에 운영이 힘들다’는 핑계로 원장이 요구한 임금 ‘페이백’을 해고될까 거부하지 못했다는 수많은 보육교사의 제보를 받으며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무력감만을 준 건 아니라 믿는다. 모두에게 공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느끼고 말하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생계소득 보장이고, 사회가 그 보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결과 나와 우리 조합원들은 최저임금제도라는 ‘생계안전망’도 새롭게 바라본다.

우리는 사회구성원의 돌봄을 책임지고 일상을 지원하는 공공부문 사회서비스 노동자다. 제자리걸음의 저임금으로 살아가도 충분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에게 최저임금 투쟁은 당장의 생계 보장을 통해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투쟁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당당히 말하고 싶다. 우리의 최저임금 투쟁은 우리 사회의 복지를 튼튼히 하기 위한 투쟁이고, 이것은 ‘코로나 시대’를 위한 중요한 국가적 과업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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