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성 ㅣ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최근 북한은 남북 직통전화를 단절시키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 남북관계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행동은 이미 여러 차례 예고됐다. 나는 지난해 10월 중국 우한에서 열린 군인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장성급 군부로부터 우리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우리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등 큰 선물(정치적 성과)은 엄청 받아갔으면서도 자신(북한)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허울 좋은 말잔치만 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자신(북한)들이 평양에서 무관중 경기(월드컵 예선 남북전)를 했겠냐’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서 남쪽의 너덜너덜한 시설물이 꼴도 보기 싫다며 철거를 지시했다.
남북대화를 회복하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우리 정부는 9·19 평양공동선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한미워킹 그룹에 사인을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때 탄생한 개성공동연락사무소의 존재가 필요도 없었고, 실제 성과도 없었다. 오히려 다양한 민간 대화 채널까지 차단시키는 역기능만 초래했다.
남북대화는 다양한 채널에서 이뤄져야 한다. 스포츠 교류는 가장 효과적인 대화 수단이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북은 남북 직통전화까지 단절해 ‘불통의 시대’에 우발적인 충돌에도 확전 위험까지 있는 상황에서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강행했다. 전쟁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서도 15년간 22번 ‘남북축구교류정기전’을 정착시킨 ‘아리스포츠컵’은 2017년 12월 중국 쿤밍에서 성공리에 진행되었고, 이 대회가 문재인 정부 최초 교류이자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북한 초청을 연결시킨 남북대화의 통로가 되었다.
2014년 10월, 경기도 연천에서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포격전이 발생했을 때도 아리스포츠컵은 같은 해 11월 연천에서 열렸고, 2015년 8월, 경기도 접경지 목함지뢰 사건과 대북확성기 문제로 일촉즉발 위기에서도 아리스포츠컵은 평양에서 성료되어 남북고위급 회담을 연결시켰다. 이처럼 아리스포츠컵 대회는 ‘남북 상호방문 교류 원칙’을 수립했고, 남북관계의 위기마다 남북대화를 연결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지금 상황도 지난 시기와 다르지 않다. 우리 협회가 추진하는 아리스포츠컵 원산대회는 지금의 위기이자 코로나 위기를 돌파하고 남북대화를 잇는 기회가 될 수 있다. 2년 전 평양과 춘천을 오가며 ‘육로 교류시대’를 열었던, 남북 소년소녀들의 우정이 머지않아 북 강원도 원산에서 이어질 것이다. 2018년 11월 북한 4·25축구단 소년소녀들은 아리스포츠컵 춘천대회 환송식에서 ‘다시 만납시다’를 부르며 “원산에서 다시 만나요”를 소리 높여 외쳤다. 아리스포츠컵 원산대회는 남북 정부 간 갈등보다 코로나19가 문제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난다면 아리스포츠컵은 원산에서 성공적으로 열릴 것이다.
눈앞의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멀리 보고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실적에 급급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남북교류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정부는 아리스포츠컵 같은 지속 가능한 민간교류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들쭉날쭉한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6·15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