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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면 안 되는 사회 / 정선화

등록 2020-07-13 17:10수정 2020-07-14 13:57

정선화 ㅣ 산부인과 전문의

7월6일 전남 담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1 학생을 대상으로 한 피임 관련 성교육 수업이 이슈화되었다. 담당 교사가 실습 준비물로 바나나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지시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로 수업이 취소되었다. 학부모들의 염려의 요지는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생에게 자세하게 성교육을 하려다 오히려 성범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성교육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과 타인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타인을 배려하는 인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성교육은 올바른 성에 대한 가치와 태도를 형성해 준다”라고 정의했다. 한국에서의 성교육은 보건 영역에 속해 있으며 초·중·고교에서 학년당 연간 15시간 정도 짧지만 필수적으로 교과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교육부 등이 2018년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한 ‘제14차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살로 조사됐다. 문제는 애매한 수업 편성에다 지루한 난자, 정자 이야기로 10시간가량을 채우니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언급한 심도 깊은 정의 같은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아동과 청소년들의 성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에 대한 미장센과 비유, 주제, 관계 등은 인간이 평생 살면서 언제든지 부딪힐 수 있는 문제다. 그 모든 것을 사회적 처벌로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근 채팅앱 등을 통해서 성에 접근하고 노출될 기회들은 더더욱 증가하고 있다. 올바르고 현실적인 성교육이야말로 청소년 하나하나에게 자신 및 타인의 성과 몸을 중시하고 잘못된 정보나 또래 문화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였다. 국가와 사회발전의 초석이 되는 큰 계획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당장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성과가 즉시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본인은 산부인과 의사다. 외래에서 콘돔을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겠다고 왔던 여대생이 있었다. 학교에서 전혀 가르쳐주지 않고,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키고 싶다며 전문의에게 배우고 싶다고 하였다. 현실이 이러하다. 그 누구도 현실적인 성교육 시스템과 검증된 강사 과정 및 적절한 성교육 교재나 도구의 지원에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피임을 가르치고자 어떤 식으로든 고민했을 모 교사에게 감히 누가 쉽게 돌을 던질 수 있고, 던지도록 하는가.

이 사건에서 한가지 아쉬운 건 애초 제대로 된 성기 모형이 구비되어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사실 교사 개인이 모두 준비해놓을 수도 없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 경우 피임 방법 교육에 대해 더 혐오적인 시선을 던질지도 모른다. 방법도 중요하지만 교육자의 진심 어린 청소년 존중 등 윤리적 소양과 지식을 갖췄다면 남녀가 함께 성교육을 듣든, 바나나에 콘돔을 씌우든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언제까지 난자와 정자 타령이나 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의 아이들은 곧 우리의 미래다. 이미 아이들이 성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에도 부정만 하다가는 적절한 교육 시기를 놓치고 그들을 더 위험에 내모는 사회로 악화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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