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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사슴을 잡아 온 민주노총 위원장? / 강신만

등록 2020-07-22 15:45수정 2020-07-23 02:40

강신만 ㅣ 민주노총 대의원·전교조 부위원장

협상 테이블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호 주고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일방적으로 얻기만 할 수는 없다.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협상장에서 얻을 수 있는 크기와 양은 각자가 가진 힘만큼이다. 이번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져온 노사정 합의안은 민주노총의 힘만큼 가져온 것이다.

위원장은 노사정 협상에서 ‘전문을 포함한 67개 조항으로 구성된 최종안’을 들고 민주노총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민주노총 내의 승인을 받아야 최종 완성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민주노총의 중앙집행위원회 다수는 위원장이 받아 들고 온 협상안을 거부했다. 거부한 일부 중앙집행위원은 코끼리를 잡아 올 것을 기대했는데 겨우 사슴을 잡아 온 위원장에게 실망했는지 모르겠다.

위원장이 가져온 안을 거부한 사람들은 ‘노사정 야합’이나 ‘자본에 항복한 문서’라고도 비판한다. 또 ‘재난 시기의 해고 금지’ 등 최고 수준을 가져왔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사실을 과장하거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비판이다. 위원장이 가져온 최종안을 보면 ‘해고 금지’는 ‘고용 유지’ 등으로 대체되어 있다. 또한 취약계층 노동자의 고용 유지에 합의한 내용과 전국민 고용보험,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로서 상병수당 도입,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등 의미 있는 합의가 담겨 있다. 물론 100점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합의안을 근거로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고리를 만들었다. 이제 그 고리를 잡고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주장처럼 안을 폐기하고 투쟁을 조직하자는 것은 실사구시적이지 않다.

대의원대회의 승인이 중요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자신의 진퇴를 걸고 ‘노사정 최종안’ 승인을 요청했다. 만약 승인을 받지 못하면 위원장은 그의 약속대로 사퇴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퇴와 더불어 20여년 만에 만들어진 노사정 협상 테이블도 사라진다.

민주노총 내부에는 ‘노사정 협상은 자본의 논리에 먹히는 것’으로 규정하며 아예 협상을 부정하는 원리주의적 입장도 있다. 그리고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 협상에서 정부에 이용당했던 경험 때문에 협상 테이블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참여자 태도의 문제이지 테이블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그런 생각은 과거의 생각이고 운동의 성장에 방해되는 사고방식이다.

오히려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와 협상의 수준을 사회적 교섭으로까지 발전시켜야 한다. 각각의 단위 노조가 사용자와 교섭을 진행하듯이 100만이 모인 민주노총도 교섭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 대상이 정부와 사용자 대표 아니겠는가? 언제까지 아스팔트 위의 투쟁만으로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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