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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교육개혁’ 논쟁 2라운드: 개혁은 구호가 아니다 / 최성수

등록 2020-07-22 18:59수정 2020-07-23 02:39

최성수ㅣ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필자의 지난 글에 김종영 교수가 반론(‘김누리 교수를 반대하는 이들에게’)을 제기했다. 몇가지 오해와 관점 차이가 있지만 김종영 교수의 반론은 생산적 논의를 위한 몇가지 화두를 던져준다. 교육개혁 논의가 한걸음 진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재반론을 개진한다.

먼저 필자가 한국적 관점에서 독일 교육을 비판하고 있다는 김종영 교수의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독일의 강한 직업교육 지향성은 학력에 따른 노동시장 불평등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하지만 대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수준의 세대 간 계급 재생산을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는 수많은 독일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보고하는 사실로, 김종영 교수가 편협한 통계적 시각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이해일 뿐이라고 지적한 것은 생뚱맞다. 핵심은 독일이나 한국이나 완벽히 우등하거나 열등한 시스템은 없으며, 독일 교육 역시 장점만큼이나 그 장점을 지탱하기 위해 사람들이 감수하는 단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독일 교육을 본받으려 할 때, 장점에 동반되는 단점을 논하지 않고 이상적인 부분만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독일 교육의 전체적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국식 오해가 아닐까?

둘째, 맥락을 소거한 반쪽짜리 통계적 접근에 대한 김종영 교수의 우려에 격하게 동의한다. 마찬가지로 선명성과 이념적 지향만 앞세워 현실 근거와 맥락, 조건에 눈을 감고 있는 접근 역시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통계적이든, 질적이든 간에 엄밀한 근거와 깊은 이해, 논리적 해석을 바탕으로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서 근거 기반 정책결정 패러다임이 사회정책 설계의 핵심 원칙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근거 기반 정책결정의 토양이 미성숙한 상황이다. 교육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얻어야 할 것은 김종영 교수가 강조한 “실존적 자각”이 아니라 국가 행정자료 등 양질의 데이터 구축을 바탕으로 통계적, 과학적 근거들을 산출하고, 이에 입각해 사회·교육정책들을 논의, 설계하는 접근 방식이다.

셋째, 대학개혁이 엘리트 대학 출신의 엘리트 집단 때문에 좌초되고 있다는 김종영 교수의 주장이다. 정말 작금의 문제가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악의적 영향력을 제어하기만 하면 해결될 단순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현실은 다르다. 특정 적폐 집단 탓으로 환원될 수 없는 구조적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누리, 김종영 교수가 주장하는 독일식(혹은 유럽식) 국공립대학네트워크가 한국에서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낮은 대학진학률과 함께 유지되어온 독일식 직능 중심 노동시장 체제가 없기 때문이고, 높은 세금을 바탕으로 비싼 대학교육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 체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구조적 조건들은 언급하지 않은 채 더딘 변화를 사람들이 김누리 교수처럼 자각하고 깨우치지 않기 때문이라 하는 것은 독일, 유럽 교육시스템을 둘러싼 구조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적 조건들의 근본적 변화 없이 대학개혁은 불가능한가? 김누리, 김종영 교수의 비전에 따르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필자의 주장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글에서 제기했던, 좀 더 현실적인 국공립대학네트워크 비전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한국 대학시스템과 구조가 유사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장학금 확대와 소득 연계 학자금대출(졸업 후 장기간에 걸쳐 소액을 일정 소득 이상을 거둘 때만 상환하는 제도) 도입을 통해 대학 공공성 제고의 성공 사례를 보여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험 또한 좀 더 현실적인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다.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교육개혁은 너무나 중요해서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나 괴테의 수사가 아니라 진지하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 경청하고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과 논쟁을 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정책개혁은 깨우침과 자각, 선명한 구호와 이상적 비전의 영역이 아니라 자료와 근거의 축적, 깊은 이해와 해석을 동반하는 과학의 영역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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