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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국판 그린뉴딜, 담론부터 다시 / 지현영

등록 2020-07-27 18:08수정 2020-07-28 02:37

지현영 ㅣ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기업은 있고, 국민은 없다.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를 지켜보는 내내 든 생각이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의 축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졌던 기대가 무색해졌다. 기후위기 시대를 이렇게 안일한 자세로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가 천근만근이다.

그린뉴딜이 대두된 배경에는 기후재난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다. 어떤 방법으로 빠르게 온실가스를 감축할 것인지, 그 전환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의 화답이었다. 즉, 그린뉴딜의 모든 프로젝트는 온실가스 감축으로 수렴되어야 하며, 정확한 저감 목표가 숫자로 제시된다. 그러나 한국판 그린뉴딜의 목적은 저탄소 그린경제를 가속화해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며, 이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녹색산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장차 넷제로(탄소중립) 사회를 지향하겠다고 하는데, 의미가 분명한 것은 ‘녹색산업 생태계 지원’뿐이다. 누구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한다는 것인지, ‘장차’가 어느 시점인지, ‘지향’이라는 모호한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숫자로 드러난 것은 저감 목표가 아니라, 73조원의 녹색산업 지원금액과 이를 통한 66만개의 일자리 목표이다.

그렇다면 어떤 산업을 지원할까? 10대 대표 사업 중 그린뉴딜과 관련된 내용으로 제시된 것은 ‘그린 리모델링’, ‘그린 에너지’, ‘친환경미래 모빌리티’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먼저 ‘그린 리모델링’의 경우 공공 노후 건축물부터 스마트화, 디지털화, 그린화를 선도한다. 민간의 동참은 유도한다. 공공건축을 개조하되, 민간을 규제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40%가 건물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린뉴딜에서 건축은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민간건물의 에너지 효율도 빠르게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두번째는, ‘그린 에너지’이다. 에너지 효율을 위해 지능형 전력망 체계를 구축하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데,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얼마나 늘릴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석탄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뒤바꾸는 것에 대한 로드맵이다. 그리고 중간단계로서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어떻게 가져갈지 치열한 찬반 논의를 한다. 해상풍력단지를 만들고 수소도시를 조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전 국토의 에너지 전환을 어떻게 정의롭게 이룰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의 경우, 전기차 113만대, 수소차 20만대를 보급하고, 노후 경유차 116만대 조기 폐차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차량등록 대수가 2344만대이다. 거대 담론에 걸맞지 않은 지엽적 정책이고, 온실가스뿐 아니라 미세먼지 해결에 관한 특단의 조치를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부응하는 효과를 내기에도 미미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에 현대자동차 대표가 나와 “2025년까지 전기차 100만대를 팔고,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기록하여, 일자리를 ‘많이’ 늘리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것이 적절한지, 기업이 그린뉴딜을 이끌어감에 대표성을 갖는 것이 맞는지 아리송하다. 또한 상용화하기에 기술 개발도 미흡하고, 분권형 에너지 전환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수소를 국가의 대표 에너지산업으로 가져가는 것은 사회적 딜(합의)이 된 일일까?

분명한 것은 넷제로를 ‘지향’하는 정도로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논의를 선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는 이미 넷제로·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선언하고 탈탄소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한가하지 않다. 코로나 시대인 지금도 위기고 앞으로는 더욱더 위기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진단도, 방편도 틀렸다. 기후위기에 가장 크게 타격받을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하는 내용도 빠져 있다. 유럽연합은 최소 1조유로 규모의 공정전환기금을 마련하는 내용을 중요한 골자로 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에서 막힌다는 점은 큰일이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그린뉴딜인가?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취약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그린뉴딜은 아닌 것 같아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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