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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교육 개헌’을 논할 때다 / 박은선

등록 2020-07-29 18:35수정 2020-07-30 02:39

박은선 | 변호사·전 고등학교 교사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나 서울대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다. 단 서울대 교육을 ‘추구할 권리’만이다. ‘실제로 서울대 교육을 받을 권리’는 점수로 제한된다. ‘서연고 포카 서성한 중경외시’ 등의 대학서열, 그 앞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현재 합법이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4조는 대학의 ‘공정한 경쟁에 의한 선발’을 보장하고,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그냥 균등하게’ 아닌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다. 그런데 이처럼 교육권을 능력주의로만 접근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

첫째,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 등에 따르면 인간의 능력은 다차원적이다. 또 세계의 학자들은 4차혁명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역량들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이 시험 잘 보는 능력만으로 희소한 명문대 자본을 차등배분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둘째, 능력을 진공에서 기계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지도 동일한 문화자본 속에서 성장하지도 않는 만큼, 누군가의 현재 능력이 오롯이 그의 일신전속적 재능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갑의 90점은 ‘대치동 학원발’과 ‘부모의 경제·심리적 지원’ 덕일 수 있다. 을의 50점은 ‘학원 하나 없는 지역’과 ‘부모·교사의 무관심’ 탓일 수 있다.

셋째, 교육사회학자 비고츠키는 모든 인간에겐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있고 교육은 이를 돕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스무살 전에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면 우수한 교육에서 배제시키는 방식은 현재의 능력으로 장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잠재력을 개발하지 못하게 한다.

넷째, 능력주의는 ‘실질적 평등’에 반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교육을 받을 권리는, 능력에 따른 균등한 교육을 통해서 직업생활과 경제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시킴으로써 헌법이 추구하는 사회국가, 복지국가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의의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93헌마192) 모순이다. ‘능력에 따라’ 교육하면 ‘실질적 평등’에서 오히려 멀어지기 때문이다. 점수 높은 이들에겐 좋은 교육여건을 제공하고 점수 낮은 이들에겐 반대로 하면, 이미 존재하는 학습격차는 한층 심화된다.

결국, 취업·자격취득 등에서 능력주의가 일정 기준이 될 수는 있어도 교육 기회를 능력에 따라서만 차별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래서 (북)유럽의 나라들은 평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교육권 보장을 규정한다. 노르웨이 헌법엔 ‘능력에 따라’가 아예 없다.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만 규정한다. 핀란드 헌법은 ‘능력’을 언급하지만 ‘특별한 요구’를 존중함을 명확히 한다. 독일의 연방교육진흥법 전문은 “개별 학생의 소질, 적성, 성취도에 따라서 교육을 보장”한다고, 프랑스 교육법은 교육권이 “모든 사람이 개성을 개발”하는 것과 관계된다고 쓰고 있다. 또 이에 따라 (북)유럽엔 ‘원칙상’ 대학서열이 없고 대입시험이 없으며 대학교육까지 무상이다. 의대, 법대 등 인기학과의 수요초과 문제 해결에서도 능력주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선발도 약간은 존재하나 대부분 ‘추첨’에 의하고 ‘대기기간’을 존중한다.

헌법 제31조 제1항의 “능력에 따라”는 1962년 박정희 정권 당시 추가되었다. 독재정권 시절 추가된 문구가 무조건 그른 것은 아니겠으나 당시와 현재의 교육에 관한 국민의 인식은 분명 달라졌다. 최근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경쟁교육은 반(反)교육이다’, ‘대학서열, 대학입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의 글과 방송이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명문대학, 명문학과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보시키는 우리 교육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들은 이제 혁명 수준의 교육개혁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행정수도에 관한 개헌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교육권 조항의 개헌도 못지않게 중요하고 시급하다. 특히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의 국립대를 통합하는 ‘한국대학’ 설립안 등은 대학 서열화, 교육권 차별 문제와 관련된 만큼 이를 계기로 교육개헌의 공론장을 열 필요가 있다.

(최근 대학서열화 폐지 등을 주장하는 청소년들의 자발적 단체 ‘교육혁명플랜’이 움직임을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교육권 보장’을 위해 이들을 지지하며 여러분께도 ‘동참’을 권합니다. kyungjun356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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