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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정원 개혁은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가능 / 엄기섭

등록 2020-08-10 18:07수정 2020-08-11 02:37

엄기섭 ㅣ 변호사(법무법인 동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회의’를 주재한 이후 공수처법 제정 등으로 검찰 개혁은 완성되어가고 있으나 국정원 개혁은 진전이 없다. 그 이유는 국정원의 ‘신원조사’에 있다고 본다.

국정원 직원의 신원조사는 법률인 국정원 직원법(제8조의2)에 근거하여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 임용예정자의 신원조사는 법률에 아무런 근거가 없고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제36조 등)과 대통령훈령인 보안업무규정 시행규칙에 의해 행해지고 있다. 공무원 임용예정자는 ‘신원진술서’에 자기의 직장전화·휴대폰·이메일, 가족·친교인물의 직업·직책 등을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하여 총리실을 포함한 행정 각 부는 보안업무규정 시행세칙(훈령)에서, 국회는 국회보안업무규정(국회규정)에서, 법원은 법관인사규칙(대법원규칙)에서 구체적으로 신원조사를 규정하고 있는데, 신원조사회보를 받기 이전에 직원을 채용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제25조는 공무담임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공무원 선발에 관해 공직이 요구하는 직무수행능력과 무관한 요소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공무담임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판례(헌재 1999. 12. 23. 98헌바33)에 비추어, 직무수행능력과 무관한 신원조사를 받도록 하는 것은 공무원 임용예정자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다(헌재 2015헌마654에 비추어 일반적 행동자유권도 침해하여 위헌이다).

헌법 제37조와 제75조에 의하면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로 해야 하고 대통령령으로 하려면 법률에 근거를 두고 법률로부터 구체적으로 위임을 받아야 하는데 보안업무규정에 의한 신원조사는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고 법률로부터 구체적으로 위임을 받지도 않았으므로 위헌이다.

모법조항의 위임 없이 규정된 시행령 조항은 무효이며 무효인 시행령 조항에 근거해 이루어진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례(대법원 전원합의체 2015. 8. 20. 2012두23808)에 비추어, 법률의 위임 없이 신원조사를 규정한 보안업무규정은 무효이며 무효인 보안업무규정에 근거한 신원조사는 위법하다.

신원조사의 현실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원진술서가 존안자료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1997년 3월17일자는, “안기부 전직 실장급 간부는 “존안자료야말로 안기부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라고 말한다. 존안자료가 A4 종이로 100쪽 분량이 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일도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고 보도하였는데, 현재도 존안자료는 작성·유지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신원진술서에 근거한 존안자료 등으로 국정원이 주요 공무원 특히 법원·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한겨레> 등은, “정권이 바뀐 뒤 프락치가 “일 그만둬야 하지 않냐”고 묻자, 국정원 직원이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도 버틴 조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할 일은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는데, 국정원이 법원·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셋째 신원조사가 국정원 개혁에 대한 방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국정원이 공무원의 신원진술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전화·이메일을 도·감청, 해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실제로 도청 등을 한다면 공무원의 업무진행 상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국정원이 공무원 가족·친교인물의 직업·직책 등을 알 수 있으므로 이것을 활용하면 공무원의 직무수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신원조사를 폐지하면 국정원 개혁이 가능하고 폐지하지 못하면 불가능하다고 본다. 신원조사는 보안업무규정과 그 하위규정에 의해 행해지고 있으므로 그 폐지는 대통령령의 개정으로 가능하다. 국무회의를 거치면서 신원조사 폐지가 언론 등에 보도되면, 청와대, 총리실, 국회, 법원 등의 훈령 등도 모두 따라서 개정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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