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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건강격차 해소를 위해: 의사는 더 필요하다 / 김윤

등록 2020-08-12 16:43수정 2020-08-13 02:39

김윤 ㅣ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

정부가 향후 10년에 걸쳐 의료취약지에서 일할 의사 4천명을 별도로 뽑아 양성하겠다고 하자 의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지난 7일 파업을 했고 의사협회는 14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유는 우리나라에 의사가 부족하지 않은데 의사가 늘어나면 의료비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리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 의사는 부족하지 않은 것일까?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은 우리나라처럼 손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를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데 의사가 부족하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맞다. 가벼운 병으로 동네 병·의원을 찾을 때는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의료 접근성이 중요한 응급환자나 중증환자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기 어렵다.

응급환자는 시골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도시에서도 제대로 진료를 받기 어렵다. 2017년 응급센터는 중증외상환자 5명 중 1명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켰고, 이들 가운데 4분의 1은 다시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골든타임을 다투는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이유의 약 절반은 환자를 진료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중증환자는 주변에 큰 종합병원이 없으면 진료를 받기 위해 큰 도시로 나가야 한다. 국민들이 1시간 이내에 큰 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는 전국을 70개 진료권으로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70개 진료권 중 20개에는 큰 종합병원이 없거나 부족하다. 우리 국민 7명 중 1명(약 700만명)이 중병에 걸렸거나 큰 수술을 받으려면 큰 도시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이들 의료취약지에 큰 종합병원을 운영하려면 당연히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이나 분야가 있는 것은 맞지만, 정부가 노력해서 의사의 분포를 개선하면 해결될 문제이지 의사 수를 늘릴 일은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지방에서 일하는 의사와 중소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면 분포가 개선될 거라는 거다. 의사가 많은 서울에 견줘 의사가 적은 경북은 의사 월급이 1.5배 높다. 병원급 의사의 월급은 대학병원 의사의 2배를 넘고 근로자 평균 임금의 5~7배에 이른다. 의료취약지에 사는 국민들이 큰 도시와 같은 의료 혜택을 받으려면 의사 월급을 얼마나 올려줘야 할까?

의사를 늘리면 안 되는 이유로 인구 감소도 들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 의사를 늘리면 미래에 공급과잉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추가로 배출될 의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향후 30년 동안 우리나라 인구는 지금보다 8% 줄어드는 반면 노인 인구는 234% 늘어난다. 노인이 늘어나면서 입원환자 수는 거의 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는 뜻이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의사들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의사를 늘리는 것만으로 의료취약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란 주장에는 동의한다. 의료취약지에 규모가 작은 병원을 300병상 이상으로 확충해야 하고, 대학병원과 연계하여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하며, 적은 수의 환자를 진료해도 유지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수가를 높여줘야 한다.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늘리는 것은 점점 심각해지는 의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를 채우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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