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에리 코펜스 ㅣ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사무총장
8월19일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구하는 의료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인도주의 활동가와 의료 종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특히 올해 세계 인도주의의 날은 코로나19가 초래한 전례 없는 위기 상황 속에서 다른 이들을 돕고 있는 구호 활동가를 기리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유엔에서 제시한 올해 세계 인도주의의 날 주제는 ‘현실의 영웅들’(#RealLifeHeroes)로,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으로 칭하며 이 날을 기념한다.
인도주의 활동가로서 필자는 모든 활동가의 헌신적인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들이 일하는 과정에는 최전선에서 직면하는 위험과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구호 및 의료 종사자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우선 공공 보건과 복지를 담당해야 하는 각국 정부의 기본적인 책임이 외면될 여지가 있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일부 국가에서는 수년간 공공 의료 프로그램에 재원을 투자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만들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개인 보호 장비가 부족해지며 의료 종사자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감염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화’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이 된다면 정부는 실패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국민의 의료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는 상황이 묵인될 위험이 있다.
안타깝게도 인도주의적 가치는 보편적인 규범이 되지 못했다. 최근 포퓰리즘과 압제가 증가하며 인간의 존엄, 평등, 다양성, 연대 등의 원칙에 의문을 가지거나 방치하는 일이 많아졌다. 전쟁과 무력 분쟁 가운데 민간인과 인도주의 활동가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 인도주의 법’은 무시되거나 괄시받는 경우가 많으며, 이로 인해 환자와 인도주의 활동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 대한 무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전세계 난민을 향한 혐오적인 대우로도 해석된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고 존엄성을 지킬 자격이 있으며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국적,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이러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인도주의적 행위의 핵심은 인간성과 공정성의 원칙이다. 실질적으로 이러한 원칙들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운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국경없는의사회가 환자의 의료적 필요를 최우선시하고, 정치적 이해관계, 숨은 의도나 계획의 영향 없이 환자와 지역사회를 지원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를 돌보는 ‘공동의 책임의식’이라는 패러다임 아래 협력할 필요가 있다. 인류를 위한 전세계적 협력은 윤리적 의무로 볼 것이 아니라 존재와 관련된 문제로 봐야 한다.
인도주의 활동가를 영웅으로 미화하며 우리는 이들을 거의 신화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킨다. 나아가 인도주의적 가치에 대해서도 높은 기준을 세워 매우 특별하거나 달성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공감과 연민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특별한 업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을 돕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려는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공공 보건을 최우선으로 두고, 현재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세계에 공평하게 분배되는 공공재임을 확실히 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기념해야 할 영웅의 행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