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8·15 일흔다섯돌의 정언명제 / 김삼웅

등록 2020-08-12 18:31수정 2020-08-13 02:38

김삼웅 ㅣ 전 독립기념관장

해방이되 독립이 아니고, 독립이되 해방이 못 되고, 광복이되 빛이 없는, 그래서 그냥 8·15라는 숫자로 불러 마땅한 8·15 일흔다섯돌을 통절한 마음으로 맞는다. 여기에 코로나19 역병과 미증유의 홍수 피해 등 재난이 겹쳤다. 자주독립도 평화통일도 이루지 못한 채 다시 이날을 맞는 우리는 3·1혁명에 나섰던 선열들과 임시정부와 의병·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선대들에게 부끄러운 후손들이다. 그래서 미완의 해방·독립·광복이다.

돌이켜 보면 중국은 한반도를 자국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망치’로, 일본은 ‘자신들의 심장을 겨누는 비수’로, 미국은 ‘동북아의 전진 기지’로, 러시아는 ‘자국의 팽창에 분리될 수 없는 행동반경’으로 각각 인식하면서 결코 영향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 열강은 힘이 강하거나 국제정세가 유리하다 싶으면 단독으로 집어삼키려 들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쪼개어 반쪽이라도 야욕을 채우고자 했(한)다.

우리는 더 이상 민족 내부끼리 낡은 이념싸움과 이해다툼과 지역갈등을 벌일 여유가 없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자. 한반도는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냉전지대다. 유엔 가입 200여개국 중 유일한 분단국이다. 분단 이후 열전·냉전·신냉전을 모두 겪은 유일한 민족이다. 아직도 평화체제를 갖지 못한 채 70년 동안 정전체제에 묶여 있다. 시황제를 꿈꾸는 중국 시진핑의 대국주의, 도무지 언행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미국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 21세기 차르의 길을 걷고 있는 푸틴의 러시아, 한반도 화해 분위기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군사대국을 추진하는 아베의 일본. 동서남북 어디에도 우리가 기댈 언덕이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브레진스키가 지적한 대로 ‘한반도 주변에 네 마리의 식인 코끼리’가 으르렁거리며 틈을 노린다. 특히 미·중의 패권 다툼은 앞으로 한반도의 진운에 적잖게 작용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중에는 이미 차이메리카(Chimerica)란 조어를 사용하는 이도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엄중한 역사의 전환기에 처해 있다. 3·1혁명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넘기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현시점은 역사의 정도(正道)와 정맥(正脈)을 회복하여 남북화해와 민주공화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식민지 잔재와 남북대결, 각종 적폐를 미봉한 채 전제적 퇴행을 거듭하느냐의 갈림길이다. 세계문명사의 성장과 소멸 과정을 연구한 아널드 토인비는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적인 엘리트 집단이 부패 타락하면 그 문명권은 몰락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피어린 투쟁으로 창업이 이루어지고, 민주화운동과 산업화로 어느 정도의 수성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일제 잔재, 군사독재 잔재, 사대주의 세력, 냉전분단 세력의 발호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이들이 끼친 적폐는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 흔히 우리나라를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부르고 그 역동성을 평가하지만, 반동적 정치세력과 지식인·종교인, 족벌언론,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극우 유튜브, 부패재벌, 개혁되지 않은 검찰, 반기독교적인 대형교회 등이 ‘기득권동맹체제’를 갖추면서 개혁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식민지 해방전쟁에 이어 반독재 민주화운동, 특히 2017년의 촛불혁명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부패 무능한 위정자들을 감옥으로 보냈으며, 입만 열면 ‘종북좌파’라는 해묵은 허깨비를 쫓는 수구파 정치인들을 21대 총선에서 대거 물갈이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지체된 부문이 너무 많다. 국가기관 중 가장 큰 불신의 대상인 정치권(국회)과 사법·검찰 그리고 족벌언론과 재벌이 그렇다. 나라의 핵심축이 대부분 국민의 기대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민주주의 척도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총체적인 발전상에도, 가장 모자라고 지체되고 있는 현상 중 하나라면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실종이 아닐까 싶다. 어느 시대나 국가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면 그만큼의 의무와 도덕성이 따라야 하는데도, 우리의 경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자 직위를 남용하거나 ‘기득세력 동맹체’를 형성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지배·수탈하려 든다. 8·15가 해방·독립·광복의 정명을 찾고 25년 뒤 100주년 행사에는 남북이 함께할 수 있도록, 사회지도층의 ‘도덕성과 의무’를 촉구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