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ㅣ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나야말로 진짜 임차인이다. 임대차 3법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법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임대인은 임차인을 공격한다. 법을 주장하면서 나가라고 한다. 돈 많은 임대인은 전세금 빼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아 법 운운하는 임차인 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임차인은 철새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아야 한다. 게다가 휠체어 장애인 임차인을 반기는 임대인은 단 한명도 없다고 할 정도다. 우리 집주인도 부동산에서 나를 처음 본 순간 표정이 굳었다. 집에서도 휠체어를 타느냐고 물었다. 바닥에 흠집이 생길 것을 걱정한 것이다.
며칠 전 장애인 커뮤니티에 전세 계약 자리에서 임차인이 장애인인 것을 보고 임대인이 그냥 돌아갔다는 하소연이 실렸다. 앞으로 더욱 장애인 임차인이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전세 품귀 현상이라 임대인들은 얼마든지 임차인을 골라서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월세를 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월세는 너무나 큰 부담이라서 생활고가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정부 지원금 없이 살던 장애인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하게 되어 사회적 비용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생긴다.
발달장애인 화가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한 사회적기업에서 사무실 계약을 하려고 4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만난 임대인이 “뭐 하는 에이전시냐”고 묻기에 장애인예술이라고 하였더니 “계약 조항에 장애인 출입 금지를 넣자. 다른 사무실에서 싫어한다”고 하여 옥신각신하다가 계약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주택자 투기꾼을 없앤다고 내놓은 법으로 장애인 임차인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사회학자 토머스 험프리 마셜은 ‘국민이 요구하는 권리는 공민권에서 참정권 그리고 사회권으로 확대되어 간다’고 했다. 공민권이 세금을 낼 테니 보호해달라는 안전의 욕구였다면 참정권은 정치인이 잘못하면 투표를 통해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욕구다. 오늘날 요구되는 사회권이란 생활에 기반이 되는 주거, 의료, 공공시설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재화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의 권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의료 부문의 사회권에는 믿음이 생겼는데 주거 문제에 혼란이 생기자 심각한 사회권 침해가 느껴지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가장 심하게 차별을 느끼는 부분도 바로 사회권이다. 이 세상은 다수에 의해 움직여지기에 소수인 장애인 편의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인 차별 문제를 제기하면 장애인을 배제한 적이 없다며 장애인에 대한 혜택도 차별 아니냐는 그럴듯한 논리를 펼친다.
이 말 속에는 커버링(covering) 압력이 들어 있다. 뉴욕대 로스쿨의 겐지 요시노 교수는 현대사회에서 장애인 등 소수자를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커버링은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것이다.
‘장애인 티’를 내지 말라는 것은 아이에게 어른 티 내라, 여자에게 남자 티 내라, 노인에게 청년 티 내라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임대인에게 장애인 티를 내지 않으려면 휠체어를 타지 말아야 하는데 휠체어를 멋으로 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휠체어가 아니면 꼼짝도 할 수 없으니 바퀴 달린 의자를 사용해서라도 이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 살아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인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임대인들이 장애인을 거부하는 현상이 더 노골화하여 많은 장애인이 사회활동을 접고 서울을 떠나 집값이 싼 곳으로 가 감옥처럼 살게 될 것 같아서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