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ㅣ 강원 영월군 영월읍 하늘샘 지역아동센터장
13평 정도 되는 주택에 외할머니, 엄마, 외삼촌과 함께
사는 아이의 집은 분리되지 않은 각자의 짐으로 발 디딜 틈조차 없는데다 들여놓을 데 없는 옷장이 잘 열리지 않는 창문마저 다 가려버려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 별도의 주방도 없어서 방 안에서 밥을 먹어야 하다 보니 빠져나가지 못한 냄새가 지층처럼 쌓였다. 당연히 그곳에서 사는 아이의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지만 작은 화장실 안에 샤워기를 설치한 게 전부인 아이의 집에서는 목욕할 데도 마땅치 않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목욕봉사로 아이를 데리고 정기적으로 목욕탕에 갔지만 이제는 중단되었고 지역의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곰두리목욕탕 문을 두드렸지만 코로나로 여의치 않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고물상이 팔리는 바람에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 고물상 안에서 딸 둘과 함께 살았던 아버지는 고물상을 겸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고 고물상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는 대신 사는 집은 사무실과 식당 용도로 지어진 듯한 일자형 건물의 한칸을 구해 입주했다. 다행히도 두 딸이 함께 있을 작은 방 한칸이 직사각형의 한 면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문이 달려 있지 않아 옷을 갈아입기에도 잠을 잘 때도 불편해 보였다. 더 안전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옷을 갈아입을 곳은 있어야 했기에 공부방 만들기 지원사업으로 직사각형의 한 면에 문을 달고 2층 침대와 책상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한평 남짓한 부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이자 아버지의 방이며 아이와 언니의 공유공간이기도 한 방은 여전히 한 아이가 뛰어놀며 자신의 몫을 감당해나갈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언니가 제아무리 정갈하게 청소를 해놓을지언정 말이다.
할머니와 함께 주택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아이의 집은 천장에 비가 샌다. 각 면의 모서리마다 검은 곰팡이가 눈물 자국처럼 얼룩져 있었다. 화장실은 고장이 나도 고치지 못해 쓸 때마다 바가지로 물을 부어야 했으므로 항상 변기 위의 뚜껑은 열려 있어야 했다. 연탄을 때지 못하는 여름인데다 긴 장마로 인해 곧 내려앉을 듯한 낡은 천장과 눅눅한 습기로 마음마저 무너져 내린다. 지난 7월에 지원을 받아 손자의 방 한칸을 수리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공간은 여전히 비가 새거나 고장 난 채이다. 심지어 수리한 그 공간마저 비가 새서 하얗게 도배된 곳을 적시고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비가 새는 것을 해결해주려 연결해주었던 단체에서는 소식도 없다고 해서 다시 연락을 하자 알아보겠다고 하고 다시 연락이 없다. 파란색 자신의 책상에 앉아 손 닿는 곳에 있는 책을 꺼내 읽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감자꽃처럼 환한 웃음을 지으시던 할머니의 마음이 비에 젖은 지 오래다.
단지 이 아이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보증금도 없는 10만원 달셋방을 전전하기도 하고 고물상 안 컨테이너에서 살거나 아예 얹혀살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기적에 가까운 이들의 꿈은 미래로 한발도 내딛지 못한 채 늘 현실에 고정되어 있다.
신문에서도 티브이에서도 집값 이야기로 뜨겁다. 1주택, 2주택, 다주택, 10억, 20억, 마치 같은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겉돈다. 지상의 내 방 한칸 지켜내기 위해 오랜 장마 끝에 행여나 비가 새서 눅눅해진 천장이 뚫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며 곤두선 채 하루하루 버텨내는 이들에게 이런 기사는 슬픔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2장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빗방울만 떨어져도 비가 스미는 지붕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지 않고 하루가 끝나면 목욕도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에 사는 것, 긴 장마의 끝, 담장에 핀 연보라색 나팔꽃처럼 우리 아이들이, 그 주변으로 끈처럼 이어진 공동체가 꼭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존중을 받는 평범한 일상이 먼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 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