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 건물에 국적을 이유로 이곳에서 활동했던 일본인을 비난하는 펼침막이 붙어있다. 류광옥 제공
류광옥 ㅣ 변호사·나눔의 집 공익제보자 대리인
‘한국 사람들 좋은 사람인 거 잘 알아요.'
나눔의 집에서 쫓겨나 퇴촌의 한 모텔에서 짐을 풀었다는 마리오에게 ‘너무 서러워하지 말아요'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렇게 답변해왔습니다.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리오가 숙소로 쓰는 뒤채로 유족 두분이 왔습니다. 유족분들의 어머니를 마리오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족 두분이 나눔의 집에 오시는 과정은 참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번도 유족이 그곳에 거주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갑자기 할머니들 묘소 관리를 위해서 거주할 것이라는 시설장의 설명은 알쏭달쏭했습니다. 나눔의 집에 계시는 두분 중 한분이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짜고짜 마리오에게 “일본놈의 ××가…'' “니가 뭔데 이 ××가 여기에 있어?”라고 했습니다. 마리오는 “저는 그런 일본 사람 아니에요. 일본한테 반성하라고 하는 일본 사람이에요”라고 말했지만 그 유족은 “뭐라는 거야? 이 ××가…”라고 하고는 더 심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마리오를 밀쳤습니다. 다른 직원들이 유족의 큰소리에 달려왔습니다. “이것들이 뭐 안다고 이 ××이야. 건방진 것들… 너네들 누구랑 짜고 이 ××야.”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분의 분노는 마리오를 향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직원 중 한분이 제게 연락을 했습니다. 사실 저도 별수는 없었습니다. “경찰을 부르세요.”
다음날 아침 마리오에게 물었습니다. “왜 일찍 연락하지 않았어요?” 마리오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직원분까지 봉변을 당하지 않았다면 마리오는 끝까지 제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눔의 집 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초반에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나눔의 집 앞으로 왔습니다. 나눔의 집 문제가 윤미향씨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분들은 ‘윤미향은 물러나라' ‘민주당은 책임져라’라고 외치며 멀리서 마리오를 봤습니다. 서양인처럼 보이는 외모에 환호를 보내던 그분들은 마리오가 일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온갖 욕을 퍼부었습니다. 거의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그분들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들은 성조기와 함께 일장기도 자주 흔드시던데… 마리오는 예외인 것인지 참… 요지경입니다. 나눔의 집 문제가 윤미향씨와 관련이 있기를 바랐던 그분들의 희망이 꺾인 탓인지 그 이후로는 나눔의 집에서 태극기가 나부끼지는 않았습니다.
마리오는 사진 찍는 사람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사진을 찍습니다. 대학 시절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할머니들을 알게 됐고 이후 할머니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들은 마리오에게 연변 말이나 황해도 말 그리고 가끔 표준어를 가르쳐주었고 마리오는 할머니들에게 화려하기도 하고 우아하기도 한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공익 제보가 있은 뒤 나눔의 집은 마리오에게 ‘할머니들에 대한 접근금지’를 명했습니다. 마리오가 다가가지 못하는 사이 할머니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듯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마리오에게 “일본 사람이 왜 여기 있어?”라고 했습니다. 마리오는 참 서러웠습니다.
다시 나눔의 집에서 쫓겨난 날 이야기입니다. 유족의 행패에 나눔의 집 시설장 그리고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시설장은 그 유족이 ‘나눔의 집에 계셔도 되는 분이다' ‘스님들이 허락하셨다'는 이야기만 반복했습니다. 경찰도 그러면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할 뿐 어쩌지 못했습니다. 마리오가 “제가 나갈게요”라고 했습니다. 시설장도 경찰도 마리오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나눔의 집에 펼침막이 붙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는 곳에 일본인 직원이 웬 말이냐?’라고 적혀 있습니다. 나눔의 집의 일본인 직원은 마리오 한 사람입니다. 이 펼침막은 그 유족분이 붙인 것입니다. 그분에게 ‘나눔의 집 정상화 추진위원회’라는 소속까지 생겼습니다. 나눔의 집 이름 아래 할머니들의 색깔인 노란색 천이 마리오에게 ‘나가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펼침막은 나눔의 집 ‘역사관' 벽에 전동드릴로 구멍을 뚫어 단단히 고정을 해놨습니다.
누군가는 평화를 침범하는 자를 향해 무기를 듭니다. 어떤 사람은 평화를 위해 글을 쓰고 평화를 지키자 소리쳐 외칩니다. 마리오는 평화를 위해 그저 서러움을 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