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경 ㅣ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미-중 간의 갈등과 적대적 정책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휴스턴과 청두의 영사관 폐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인상마저 준다. 이러한 미-중 간의 갈등의 중심에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보안상의 이유로 화웨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최근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5G(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 설립에서 배제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정부 차원의 결정은 유보한 채,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다. 한편으로 통신사업자의 입장에서는 화웨이의 보안상 문제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압박은 부당한 내정간섭이라는 불만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화웨이에 대한 전세계적 금지와 제재가 일어나고 있는 객관적 논거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공지능(AI) 등 미래기술과 밀접히 연계된 5G 정보통신기술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화웨이에 통신망을 맡기는 경우, 중국의 대내외적 감시체제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는 억울하다는 입장이고, 정부와 당의 간섭을 일절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중국 정치·경제 현실에서 공산당의 감독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중국의 “모든” 국유, 민영, 심지어 해외합작투자 기업 내부에는 ‘당위원회’가 존재하며, 이들의 주된 역할은 경영 관리와 사업결정이 아닌 ‘정치적 감독’이다. 다시 말해, 기업의 사업 결정과 운영이 당의 지침을 따르고 준수하는지 여부를 감독한다. 따라서 정도와 범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떠한 기업도 중국 공산당의 감독과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기업에서 당위원회의 역할과 중요성은 시진핑 집권 이후 더욱 강조되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화웨이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다른 논거는 중국이 추진하는 ‘군민연합’(military-civil fusion) 정책이다. 이는 인민해방군을 2049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군대’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과학·기술 기업의 혁신적 성과를 군비 강화에 바로 연계할 수 있도록 기존의 민간연구와 국방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기술로 무장한 병력으로 발전시키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화웨이의 연구와 기술은 중국의 인민해방군과 긴밀한 협력 아래 진행되고 정보는 공유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숙고해야 하는 안보 현실이다.
제3, 4세대부터 통신 인프라 건설을 화웨이에 전적으로 의존해온 영국의 화웨이 전면 배제 선언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시그널이다. 배제를 결정한 국가들은 이에 따른 손실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에 보조금과 지원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입장을 유보 중이라 이는 결국 특정 기업에 대한 중국의 보복조치 등 기업의 시장 리스크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입장 정리와 함께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
새로운 ‘신냉전’ 시대에 안보-무역 딜레마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혹자는 한국의 중국과의 근접성, 중국의 협력이 중요한 북한 특수성, 수출의존도, 삼성·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의 주요 고객인 점 등을 고려하면, 다른 동맹국처럼 화웨이 배제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단기적 사업 손실은 불가피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화웨이가 배제된 북미·유럽 시장이 한국 기업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정책과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특수성으로 인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추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