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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제주 학생인권조례, 멈춰서는 안된다 / 고명현

등록 2020-09-09 16:55수정 2020-09-10 02:38

고명현 ㅣ 청강대 1년·제주시 조천읍

나는 학생인권조례가 실시되고 있던 경기도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제주도로 이사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4년 전 당시 제주도 고등학교의 모습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일상화된 체벌,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복장 검사와 학교 문화 등 경기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제주도 고등학교 간 축구대회인 ‘백호기 대회’가 있을 때면 모든 학생이 강제로 저녁까지 응원 연습에 참여해야 했고 학생회의 폭력과 욕설 등을 겪어야 했다.

그 뒤로 나는 선생님들께 이야기도 드리고 학교 게시판에 건의문도 써 보았다. 나 말고 다른 학생들의 노력도 있었을 것이고 도내의 다른 학교들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기에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는 학교의 모습도 조금은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선생님들은 체벌과 폭언을 이어갔고 심지어는 정규수업이 끝난 뒤 방과후수업을 의무화하려다 수많은 학생의 반대에 부딪혀 일주일 만에 철회된 일까지 있었다.

이렇듯 학교에서 수많은 일을 겪으며 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줄 제도의 필요성을 실감했으나 다른 학생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겪은 일은 새 발의 피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많은 교사, 심지어 일부 학생들까지도 제대로 된 인권의식을 갖지 못하고, 그 중요성 또한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비인권적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제주도에 이런 문화가 지속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경기도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 문제를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주 학생인권조례는 단순히 현재 학생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제대로 된 인권의식을 갖추고 교사와 학생, 교사와 교사 그리고 학생과 학생이 서로 배려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2017년 제주도의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티에프(TF)는 학생들의 인권침해 사례를 모으며 학생 인권의식 개선을 위해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올해에는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촉구 서명을 받은 후 제주도의회에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청원서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학생인권조례안이 발의되어 지난달 입법예고되었고, 이달 의회에서의 처리를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크게 반발하며 학생인권조례 간담회에 맞춰 바로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들은 자극적이고 왜곡된 논리로 학생인권조례를 깎아내리며 학생인권조례 상정을 막기 위해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면 제주도의 학생 인권 수준은 전국적으로도 매우 뒤떨어져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런 현실에서 제주도의 학생들이 한 명의 성숙한 인격체로서 대우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제주도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구시대적인 요구에 굴복한다면 앞으로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려는 새로운 시도가 있을 때마다 같은 결과가 반복될 것이고 제주도의 학생 인권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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