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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개천절 집회는 불허되어야 한다 / 박지웅

등록 2020-09-14 17:45수정 2020-09-15 13:34

박지웅 ㅣ 변호사

“우리가 서로를 위해 희생(Trade-off)하는 데는 주저해도, 팬데믹 동안에는 그럴 필요가 있다. 우리의 아이를 안전하게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술집과 음식점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이다.” 9월1일치 <뉴욕 타임스> 칼럼(‘Most of us have the risk of Covid-19 exactly backward’)의 한 대목이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우리는 충분한 자유를 누려왔다. 레스토랑과 술집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도서관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에 책 한 권을 읽으며, 공원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행동의 자유 말이다. 행동의 자유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다른 말이고, 행복은 곧 우리 삶의 최종 목표이다. 이러한 행동의 자유는, 헌법 제37조 2항에서 정한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만 제한”될 수 있을 뿐이다.

코로나19 세계는 우리가 한 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일상에서 누린 행동의 자유는 일일이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은 것이었는데, 이를 법률로써 제한한다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최근 9시까지 음식점 영업 허용은 과거에 군부 권위주의 정권 시절 ‘통금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 아닌가. 이에 더해 직업 선택의 자유, 재산권 행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교육받을 권리… 무수히 많은 기본권의 수축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한다는 헌법의 조항이 무색할 정도로, 자유와 권리 자체가 수축되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의 최우선 기본권인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다른 기본권들이 줄줄이 희생되고 있다.

모두의 희생이기도 하지만, 특정인에게는 더욱더 가혹한 희생이다. 코로나19는 노래방·피시방·프랜차이즈 카페·헬스클럽 등의 이용자에게는 일상의 기쁨과 행복을 제한할 뿐이지만, 운영자에게는 생존의 기로를 강요한다. 정부가 7조8천억원의 4차 추경 예산을 편성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에 지원하지만 이들의 희생을 보상하기에는 턱도 없는 금액이다. 이 큰 희생을 신속하게 끝내기 위해서 공동체 각자의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

일부 기독교계를 비롯한 보수단체에서 이번 개천절에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열겠다고 한다. 물론 집회·결사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의 잘잘못에 대해서 비판할 자유도 얼마든지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재유행을 초래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 집회·결사의 자유는 다른 국민의 희생을 막고, 국가의 경제·사회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제한할 수 있다. 이미 경찰에서 50건가량의 집회에 대해 불허 통보를 했지만, 보수단체들은 이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충북 전세버스조합도 집회 참여자들을 운송하지 않겠다고 나섰다.

자유가 수축되어 버린 제로섬 상황에서 일부의 자유는, 다수의 희생이다. 그 희생을 보상할 수 없다면, 10월3일 끊은 버스표와 기차표를 찢어버리시라. 국민들은 행복하게 주말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추석에는 가족과 명절 음식을 먹을, 나아가 이 답답한 마스크를 빨리 벗고 싶은 자유가 있다. 당신들의 소극적 희생이 다른 국민들과 대한민국을 코로나19로부터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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