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l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한 나라가 안보를 확보하는 방안에는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나라와의 동맹을 통해 상대방의 군사적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상대방보다 우위의 군사력을 건설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는 방안,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상대방의 군사적 위협 자체를 감소시켜 상대적 안보역량을 증진하는 방안이다.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더 완전한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 이 세가지 방안을 적절히 조합해 추진해야 한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다른 두가지 방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상대방의 군사적 위협 자체를 감소시키는 세번째 방안이다.
2018년 평양 ‘9·19 군사합의’는 북한의 군사위협을 급격히 감소시키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공존 제도화의 초석을 이루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9·19 군사합의는 과거 합의들과 달리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매우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담았다. 9·19 군사합의 이전, 북쪽은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100여차례에 걸쳐 무력시위를 일으켰다.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는 연평·대청해전, 연평도 도발 등 남북 간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이와 비교해 9·19 군사합의를 통해 남북 간 접경지역에서의 군사적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관리·유지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9·19 군사합의 이후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창린도 해안포 사격훈련, 중부전선 남쪽 지피(GP) 총격 등 무력시위를 한 바 있다. 이때마다 9·19 군사합의 무효화나 파기를 요구하는 일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수위는 훨씬 낮아졌다.
2019년 6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노르웨이 오슬로포럼 연설에서 이미 “한반도 평화의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만년설이 녹아 대양으로 흘러가듯 서로를 이해하며 반목의 마음을 녹일 때, 한반도의 평화도 대양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만큼 한반도에서 지속가능한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는 길이 험난하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한반도 안정과 평화는 9·19 군사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통해 상호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위협을 감소시킴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 안보 상황의 안정적 관리는 남쪽의 정상적인 국방개혁2.0 추진과 한-미 간 추진 중인 전시작전권 전환 과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 수해 및 태풍 등으로 한반도가 신음하고 있는 지금, 그나마 남북 간 군사 부문이 안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천만다행이다. 9·19 군사합의가 한반도 평화의 초석으로 다져질 수 있도록 남북 군사당국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긴장 해소, 손에 잡히는 평화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