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일 ㅣ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지난 9월24일 서울시교육청은 ‘아동양육한시지원 계획’에서 지원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중학생’으로 제한하는 공문을 보내왔다.
이에 따라 ㄱ중학교 교사들은 한 반에 4~5명의 외국 국적 학생들을 재난지원금 대상자에서 제외해야 하는 작업을 감내해야 했다. 결국 ㄱ중학교는 외국 국적 학생 98명을 제외한 358명의 학부모에게만 학생의 정보를 요청하는 통신문을 배부해야 했다. 교사로서 반년 이상 동고동락해온 학생 중 25%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공식적으로’ 차별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근의 ㄴ중학교 교사들 역시 395명 중 92명의 학생과 그 가족에게 그리해야 했으며, 심지어 ㄷ초등학교는 421명 중 233명에게 차별과 배제의 상처를 안겨주어야 했다.
십여 년 전 일본 사회는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어 재일 한국인에 대한 시위와 증오선동이 폭력으로 이어질 위기로 치닫고 있었다. 이때 일본의 지방정부들이 재일 조선인 학교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고 지원을 제한함으로써 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에 당한 차별적 행위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본국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위한 대책 추진에 관한 법률’(2016년 5월)을 통과시킴으로써 재일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막는 역할을 해준 바 있다.
그런데 2020년 한가위를 앞둔 시점에, 대한민국 정부는 국적만 다를 뿐 같은 한반도에서 소중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실히 일하고 있는 같은 민족에게 야만적인 차별과 배제의 행위를 가하고 있다.
교육부에 묻고 싶다. 우리나라 교육부에 ‘교육철학’이 있는가? “내가 당하길 원치 않는 일을 상대에게도 가하지 않는” ‘은율’(恩律, Silver Rule)의 철학은 교육철학의 기초에 해당될 것이다. 같은 민족의 땅 한국에 와서 자신이 맡은 직업에 최선을 다하며 성실히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공식적 차별’을 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일본 국적인 재일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당했던 차별에 그토록 분개하면서, 같은 민족인 사회 구성원을 아동양육한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가해를 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위이다.
기초적인 ‘은율’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기존 안대로 아동양육한시지원금이 차별적으로 지급된다면, ㄱ중학교를 비롯한 여타 학교들은 교육의 근간이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 국적 학생들은 어느 날 갑자기 국가로부터,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차별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 차별과 배제가 학교 내에서 어떻게 확산되고 심화될지 어떤 폭력으로 이어질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교육부에 간곡히 요청한다. 외국 국적 학생에 대한 제외 없이 모든 중학생에게 아동양육한시지원금을 지급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정철학이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 나라의 교사들이 믿고 신뢰하며 따를 수 있는 교육의 기본을 보여주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