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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원천해직자를 아시나요? / 박희승

등록 2020-10-28 18:00수정 2020-10-29 02:39

박희승 ㅣ 서울 신양중학교 교사

1989년 5월28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한 날입니다. 모든 전교조 조합원들이 ‘교육민주화기념일’로 자축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날 이 땅의 교원들은 “굴종의 삶을 떨쳐 …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 참교육과 … 민족민주 인간화교육 만만세!”를 눈물 범벅된 얼굴로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외침의 대가로 줄잡아 1500명이 넘는 교사들이 해직을 당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사마귀의 신세일까요? 현직 교원들이 직을 걸고 외쳤던 민족민주 인간화교육과 전국교직원노조의 깃발 탓에 200여명의 원천해직자(임용제외자)가 발생하게 됩니다.(물론 정확히는 당국의 부당한 처사 탓이지만, 현상은 전교조의 결성으로 비롯되었습니다.)

전교조 결성을 이유로 1500여명을 해직한 정부는 비단 현실의 전교조 죽이기만이 아니라 미래 전교조까지 말살하고자 범정부기구를 띄우게 됩니다. 안기부를 필두로 감사원, 치안본부, 문교부를 망라한 범정부기구가 당시 문교부의 ‘신규교원 보안심사 강화 지침’(1989년 7월25일)에 따라 1989년 9월 졸업생부터 시국사건 관련 예비교사들을 ‘성행불량’이라는 이름으로 임용에서 배제하게 됩니다.

원래 국립 사범대생들은 ‘국비 장학생들’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대신 5년 동안 교사로 복무해야 하고, 그러지 않은 때는 받은 장학금을 모두 반환해야 했습니다. 당시 군사정부는 법이나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전교조 말살이 더 중요했습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을 했다는 것을 곧 미래 전교조 조합원으로 받아들여 원천해직을 한 것입니다. 결국 200여명에 이르는 젊은이가 단 하루도 교단에 서보지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성행불량’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 대학을 다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게 된 이들은 모두 ‘광주의 자식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년배의 겨우 20~25%만이 대학에 진학하던 시절, 어떻게 보면 기득권 진입의 고지를 점령한 것과 같았던 그들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광주학살 비디오’와 ‘광주백서’를 보면서 광주학살의 주범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에 강의실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최루탄과 백골단에 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행불량이라뇨.

우리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기에 10여년을 하루같이 임용투쟁을 전개하였고, 마침내 1999년과 2001년, ‘시국사건관련교원임용제외자특별채용에관한특별법’(약칭 민주화보상법)을 통해 졸업 10여년이 넘어 30대 중후반의 나이로 겨우 교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을 전후해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보상금·의료지원금·생활지원금 등을 신청할 자격을 받음으로써 1차로 명예회복의 기회를 보장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시 법개정(제정)을 요구하고자 합니다. 상기 민주화보상법과 시행령에서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자에 대해 불이익을 금지(제5조의 6)함에도 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제적, 수배, 구금 등으로 불이익을 받았던 데 더하여 해당 기간의 호봉 및 연금 산정 등에서 너무나 큰 불이익 처분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얼마 전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가 오히려 법을 어긴 불법행위였음을 밝히고, 그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해직 기간의 임금, 호봉·연금 산정 등에서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는 언급과도 명백히 배치되는, 불공평의 존치이기 때문입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했습니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민주화운동으로 판정하고 그에 따라 임용을 했다면, 더 늦기 전에 불이익을 해소하는 조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10년 이상 늦게 교직에 들어온 원천해직자들도 50대 중후반을 넘기고 있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정의를 정의로 바로 세우는 길에서 한을 남기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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